늦여름 끝자락에서, 나는 새로운 나의 계절을 배운다.
비 온 뒤의 계절
어젯밤, 일기예보는 비를 예고했다. 창문을 닫고 잠들었지만 한밤중의 열기에 깨어났다. 갑자기 온몸을 덮친 뜨거움에 이불을 걷어냈다. 그러나 곧 한기가 밀려와 다시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걸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밤은 평온하지 않았다.
아침에 창문을 여니, 비 온 뒤의 공기가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흙냄새와 풀잎의 숨결이 섞인 바람 속에는 이미 가을이 숨어 있었다.
달력은 여전히 늦여름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빛의 결은 달라져 있었다.
거울 앞에 서서 멈칫했다. 언제부터인가 내 얼굴에 낯선 피로가 새겨져 있었다. 불과 몇 년 전의 사진 속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른 사람 같았다.
갱년기는 그렇게 왔다. 예고도 없이, 천천히가 아니라 급작스럽게.
몸은 자기 멋대로 뜨거워지고 식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때마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관절은 삐걱거렸고, 늘 오르던 계단이 버거워졌다.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낮에는 안갯속을 걷는 듯 멍했다.
더 힘든 건 마음이었다. 어떤 날은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또 어떤 날은 사소한 일에도 눈물이 났다. 집중이 안되고,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면 두려웠다.
'내가 나를 잃어가는 건 아닐까."
창밖으로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예전이라면 카메라를 들고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창 너머로 바라볼 뿐이었다. 아름다움이 투명한 벽 너머에 있는 것만 같았다.
옷장을 정리하다가 몇 년 전 입던 옷을 발견했다. 한때는 잘 어울렸던 색이었다. 그러나 지금 거울 앞에 대보니 어색했다. 옷이 변한 게 아니라 내가 변한 것이다. 나는 그 옷을 다시 옷장 깊숙이 넣었다.
조카가 물었다. "왜 자꾸 한숨을 쉬어?"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좀 피곤해서." 조카에게 이 혼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언젠가 너도 겪게 될 이 시간을.
그럼에도 오늘 아침의 공기는 위안이었다. 비 온 뒤의 바람은 차갑고 투명했다. 이것도 지나가겠지.
열감도, 불면도, 감정의 파도도.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계절은 반드시 바뀐다. 여름이 가을을 거쳐 겨울로 가듯, 나도 이 변화를 통과할 것이다.
지금은 혼란 속에 있지만, 언젠가는 고요한 겨울에 닿을 것이다.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바람을 들이마신다. 오늘은 이만큼.
내일은 내일의 공기가 있을 것이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