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치 금오가 전사한 것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직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천군과 군장을 겸하게 된 준오가 읍성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남산 초옥은 외동딸의 사적인 공간이 되었다. 이곳에서 세오는 죽간을 읽거나 길쌈을 하면서 소일하였다.
연오는 철막에서 일을 마치면 가슴 떨리는 열망을 품고 첫사랑의 초옥을 찾곤 했다.
단지 연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후계자에게 특별한 영감을 주는 재녀(才女)였다. 길쌈을 스스로 연구하고 수련하여 진한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
길쌈의 기본은 삼베다. 세오는 큰까막골 삼밭에서 삼을 수확하고, 삼 껍질에서 실을 자아내고, 삼실을 삶고, 헹구고, 말리는 일을 혼자 척척 해냈다.
비단 길쌈은 근오지에서 그녀가 처음이었다.
뒤뜰에 뽕나무를 심어놓고 손수 가꾸었다. 누에 치고 비단실 켜는 법은 낡은 죽간을 뒤져 찾아냈다. 고조선 왕검성에서 제정했다는 잠사법(蠶絲法)이었다.
세오는 옛 기술을 배우고 새롭게 익히면서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염색 비법은 초목의 성질에 밝은 덕을 보았다. 쪽, 잇꽃, 치자 등에서 염료를 뽑아 쌀뜨물에 풀면 실에 색을 곱게 입힐 수 있다는 걸 알아냈다.
표백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볏짚을 태워 만든 잿물을 써서 효과를 보았다.
길쌈의 완성은 툇마루의 베틀에서 이루어졌다. 세오는 베틀에 삼실과 비단실을 걸고 대마포(大麻布)와 조하금(朝霞錦)을 짰다.
발을 앞뒤로 밀고 당기며 손을 섬세하게 넣고 치는 동작들이 연오의 눈에는 매혹적인 춤사위로 비쳤다.
그녀는 길쌈으로 큰까막골의 자랑이 되었다.
진한연맹에서는 해마다 추석 무렵에 길쌈대회를 여는데, 작년에 세오가 근오지 대표로 참가해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첫 출전인데도 눈부신 솜씨를 뽐내며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을 다 제쳤다.
대회장이 낯선 사로국 궁전이었지만 세오는 기죽지 않았다. 야무지게 실을 뽑고 염색하여 다음 날 베틀에 앉았다.
세오가 짠 조하금은 해돋이의 찬란한 적황색 기운으로 대회장을 곱게 물들였다. 심사원들은 물론 참가자들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대마포 또한 올이 30승(升)으로 최정품(最精品) 판정을 받았다.
소문은 여러 소국과 부락으로 방방곡곡 퍼져나갔다. 근오지에서 배출한 ‘길쌈 선녀’라고 칭송이 자자했다.
연초에 장로회에서 세오를 배필로 정했을 때 연오는 날아갈 듯이 기뻤다. 10년이나 연모해 온 첫사랑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음 대 마루치로서 이런 아내와 함께라면 부족민들의 삶을 더욱 편안하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진한 제일의 장인(匠人) 부부가 열어갈 근오지의 복된 미래다.
하지만 혼례와 계승식이 다가올수록 연오의 미간에는 수심이 쌓여갔다.
‘불꽃망치’, 천상의 철기를 지상에 구현하는 마루치의 신물! 그것이 수심의 근원이었다.
불꽃망치에는 쇠를 지극히 정제하고 단단하게 벼려내는 마루치의 비결이 감춰져 있다고 한다.
연오는 아버지의 사람들인 야금장 무쇠 할배와 단야장 몽돌 아재의 보필을 받으며 불꽃망치의 사용법을 익혀왔다.
그러나 마루치의 비결은 찾지 못했다. 금오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바람에 대대로 전해져온 비결이 유실된 것이다.
불꽃망치를 아무리 살펴봐도 단서가 보이지 않는다. 부족의 상징인 삼족오 문양만 도드라질 뿐 아비들이 쓰는 망치와 다를 바 없다.
후계자로서는 갑갑한 일이다. 선조들이 남긴 비결도 얻지 못하고 과연 온전한 마루치가 될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을 다잡으려고 밤낮으로 일에 매달렸지만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