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두리의 습격

by 권경률

사로국 전사들을 휘몰고 온 지휘관은 대신관 석벌휴의 호위무사 귀섬이었다.


귀섬은 그동안 근오지 천군의 내실을 드나들며 밀사 노릇을 해왔기에 이 작전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천군 준오는 외부의 힘을 빌려 후환을 싹 도려내고 뒷일을 잘 수습하여 명예롭게 군장으로 추대받고자 한다.


따라서 그의 임무는 두 가지다. 정당한 후계자 연오와 그의 측근들을 찾아내 척살하는 것이 첫 번째이고, 천군이 근오지 병력을 이끌고 반격할 때 짐짓 싸우다가 물러나는 게 두 번째이다.


두 번째 임무는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두두리는 전장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상승군단이다. 이 작전에 투입된 인원은 1백 명뿐이지만 패배를 용납하지 않는 전사들이다.


임무를 숙지하는 자리에서 거센 반발이 터져 나왔다. 일부러 져주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불패 신화에 먹칠하는 불명예스러운 작전이다. 전사들은 눈알을 부라리며 성냈다.


무장한 적과 싸울 때는 모조리 도륙하는 게 두두리의 광기 어린 철칙이다. 귀신 탈을 쓰고 사람이고 짐승이고 생명 있는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죽인다.


두두리의 광풍이 지나간 자리는 참혹하다. 피가 시내처럼 흐르고 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그것이 두두리의 방식이다. 두두리는 공포 그 자체여야 한다.


그래서 귀섬도 이번 임무가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궁극의 병기는 상대 진영에 공포심을 심어주는 것이다. 전장에 귀신 탈이 나타나면 적군은 싸우기도 전에 오줌을 지린다. 으레 도망자가 속출한다. 제대로 맞붙기도 전에 승패가 갈리는 것이다.


만약 이번에 싸우다가 물러난 게 외부에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앞으로 전투 양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적군의 예봉을 꺾으려면 아군도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득보다 실이 많다.


그러나 대신관의 명을 거역할 순 없는 노릇이다. 패망한 부족의 떠돌이 고아를 거둬 진한 최고의 무사로 키워준 은인이다. 귀섬은 환두대도를 뽑아 들고 짤막하게 영을 내렸다.

"쳐라."


연오는 전율했다. 치소 뒤편 고갯마루에서 벼락 같은 함성이 터지더니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뭉게뭉게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곧이어 불화살이 연달아 날아들었다. 이엉을 얹은 치소 지붕이 불타오르자 마당에 있던 사람들이 겁에 질려 우왕좌왕했다.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두두리다!”


매캐한 연기를 뚫고 귀신 탈을 쓴 기마병들이 튀어나왔다. 달아나던 대장장이들의 목이 서걱서걱 날아간다. 피가 사방으로 튀며 마당은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다.


연오는 이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두두리라니, 어떻게 저들이 근오지 마루치의 치소에 나타난 거지? 이곳에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자들이다.


천군이 모반을 일으키려 한다는 달래 부인의 목격담도 믿기 힘든데 뜬금없이 두두리가 쳐들어왔다. 그는 눈앞의 현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꿈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몽돌 아재가 급히 연오와 세오의 앞을 막아서며 태산을 불렀다.

“너는 이 둘을 데리고 어서 여길 빠져나가야 한다. 쇠불아비들이 엄호할 것이다.”


무쇠 할배가 호각을 불자 쇠불아비들이 젊은 후계자를 둘러쌌다. 몽돌은 두들아비들과 함께 방어진을 짰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틈틈이 대장장이들을 모아 훈련해 둔 것이다.


마루치 치소를 빠져나가는 연오는 몽돌 아재의 뒷모습이 눈에 밟혔다.


등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등을 보는 건 눈을 보는 것과 다르다. 눈은 속임수를 쓰지만 등은 그렇지 않다. 그 사람의 깊은 내면은 등에 드러난다. 지금, 아재의 등이 말하고 있다.

‘연오가 도망갈 시간을 벌어야 한다. 내가 이곳에서 쓰러져 죽는 한이 있어도….’


연오는 소스라치게 놀라 몽돌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천하장사 태산이 뒤에서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는다. 세오도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저었다.


쇠불아비들은 연오와 세오를 엄호해 까마귀철막으로 향하였다. 무쇠 할배는 철막에서 신속히 무기와 장비를 챙겨 구름산에 오를 작정이었다.


몽돌과 두들아비들은 정사각형의 촘촘한 방진을 이루고 네 방향으로 방어 태세를 갖췄다. 두두리 기마병들은 방진 주위를 뱅글뱅글 돌기만 했다.


‘오호라, 지휘관을 기다리고 있구나. 시간을 좀 더 벌 수 있겠다.’


지난날 금오가 쓰던 환도 두 자루를 양손에 쥐고 몽돌은 적장이 오기만 기다렸다. 두들아비들도 창고에서 끄집어낸 쇠도리깨와 몽둥이를 들고 전방을 응시했다.


이윽고 연기 사이로 귀섬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새까맣게 옻칠한 사슬갑옷에 반지르르 윤기가 흐른다. 그는 방진을 펼친 두들아비들을 말 위에서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상대의 툭 불거진 눈을 보고 몽돌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저자는 귀신 두꺼비, 귀섬이다. 사로국 대신관 석벌휴의 심복이 나타났다는 것은 이 난리가 무슨 일인지 설명해 준다.


“준오 이 찢어 죽일 놈… 내 짐작대로 천군이 석벌휴와 내통하고 있었구나.”

몽돌은 이를 갈며 눈을 치켜뜨고 귀섬을 노려보았다.

“하늘이 정한 혼례를 두고 이런 흉계를 꾸미다니 천벌이 두렵지도 않느냐?”


귀섬이 싸늘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하늘에는 우리 대신관께서 잘 일러두셨다. 시간을 끌 생각인가 본데 군소리하지 말고 덤벼라.”


그가 허리 뒤로 비껴 찬 칼집을 당겨 환두대도를 뽑으려는 순간 몽돌이 벼락같이 움직였다. 말의 두 다리를 노리고 쌍수도 자세로 달려 나갔다. 안에서 바깥으로 가로 베기를 하여 말을 넘어뜨리고 곧장 흐트러진 적장의 목을 칠 심산이었다.


이때 말이 울음소리와 함께 다리를 번쩍 치켜올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귀섬이 어느새 공중에 솟구쳐 올라 환두대도를 겨누고 있었다.


아침햇살에 검날이 번뜩이며 아찔한 섬광을 뿜어낸다. 동시에 몽돌의 목에 가느다란 붉은 선이 그어진다. 무심한 듯 가벼운 몸놀림이다.


잠시 후 몽돌이 목을 부여잡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눈앞에 낯익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어슴푸레하지만 그리웠던 그 느낌이다.


환영이 서서히 모양새를 갖춘다. 마루치 금오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고 있다. 몽돌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주군의 손을 잡으려고 그는 두 눈 부릅뜨고 안간힘을 다해 손을 뻗었다. 쓰러지는 몽돌의 귀에 두들아비와 철막 식구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아련히 흩어져갔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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