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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초보 며느리는 모든 것이 낯설고 버겁다.

by 마음벗

나도 이제 15년 차 주부다.

즉, 며느리로 살아온 지도 15년이 되었다.

그 세월 동안 나는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한 집안의 일원으로서 살아오며 많은 감정을 맛보았다.

처음 시집왔을 때를 떠올리면, 세상의 모든 공기가 낯설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고, 누군가의 눈빛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렸다.

‘실수라도 하면 어쩌지?’

‘친정에 누를 끼치면 어쩌지?’


그 시절 나는 매일이 긴장 속에서 흘러갔다.

모든 것이 새롭고 버거웠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모든 두려움은 오직 그때만 존재했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되는 일들이, 그때는 왜 그렇게 크고 무겁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지금의 나로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일들도, 그땐 온 마음을 쥐어짜며 버텨야 했던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시어머니들은 나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들도 며느리였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나보다 더 많은 시행착오와 억울함, 눈물을 겪어보셨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며느리의 고충을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하는 걸까?


초보 며느리 시절, 시부모의 표정 하나, 말투 하나에 마음이 천근만근 눌리던 그때, 만약 시어머니가 “괜찮아, 네가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그 한마디를 해주셨다면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

아마 수많은 며느리들이 그 한 문장만으로도 울음을 삼켰을 것이다.


요즘 세상에 시부모가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순종하며 사는 며느리가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그 시절 나는 그랬다.

순종해서가 아니라, 잘 지내고 싶어서였다.


단지 평화롭고 싶었고, 갈등 없이 웃으며 지내고 싶었다.

그 마음 하나가 나를 매번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시댁은 그들에게는 평온한 일상의 공간이다.

수십 년을 살아온 터전이니, 그 안에서는 숨 쉬듯 자연스럽다.

하지만 며느리에게는 모든 것이 낯선 곳이다.

그 낯선 곳에서 잘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 허둥대는 며느리에게,

“괜찮아, 다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돼.”

그 말 한마디가 있었다면 세상은 훨씬 따뜻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나는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모든 일을 ‘당연히 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가 시켜서라기보다, ‘그게 며느리의 역할’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짐을 졌다.

그렇게 해야 사랑받을 거라 믿었고, 그렇게 살아야 문제를 피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보니, 며느리로서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남편도, 아이도 아니었다.

바로 시어머니였다. 사실 그렇게 된 것이 문제이기도 하다.


그녀의 태도 하나가 한 가정의 공기를 바꾸었다.

며느리를 향한 말 한마디가 평화가 되기도, 전쟁이 되기도 했다.


시어머니의 자리는 단순히 ‘남편의 어머니’가 아니라,

‘한 여자를 가족으로 품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위치’라는 것을.


그 자리에서 어떤 말을 선택하느냐, 어떤 시선을 보내느냐에 따라

며느리는 가족이 될 수도 있고, 노비가 될 수도 있다.

시어머니가 자신의 짐을 며느리에게 그대로 내려놓을 수도 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책임의 전가다.


‘이제 네가 해야 할 일이야’라는 말로, 며느리의 어깨 위에 세월의 무게를 얹는다.

하지만 진짜 현명한 시어머니는 그 짐을 내려놓지 않는 사람이다.


며느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이해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세월이 흘러 내가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시어머니가 될 것이다.


그때는 잊지 않으려 한다.

처음 시댁 문을 두드리던 그날의 떨림, 그 낯설고 버거웠던 감정을 잊지 않으려 한다.


권위는 명령으로 세워지지 않고, 배려로 세워지다는 것을 안다.

“며느리를 품는 순간, 그 집안의 사랑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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