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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고부갈등, 며느리에게 닿지 않는 온기

by 마음벗

며느리들은 참고 또 참는다.


아내는 어느 순간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게 된다.

처음에는 ‘좋게 말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남편에게 시어머니에 대한 불편함을 최대한 완곡하게 전한다.

무엇보다 며느리들이 가장 화가 나는 것은, 남편이 아내의 마음과 경험을 단순히 ‘아무 문제없다’며 가볍게 치부하는 안일한 태도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상처가 쌓이면, 그 표현의 강도는 조금씩 달라진다. 말의 어조는 더 단단해지고, 속에 담긴 감정은 억눌러지지 않는다.


그럴 때 대부분의 남편들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우리 엄마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야.”

“네가 오해한 거야.”

“우리 엄마 착한 사람이야.”

“어른이 좀 그럴 수도 있지.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해?”

그렇다. 아들들은 순진한 착각을 하며 살아간다.


아니, 어쩌면 착각해야만 관계가 유지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에는, 너무 많은 죄책감과 복잡한 감정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진실보다 본인의 평화를 택한다.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우리 엄마는 선하다.”

그 말에는 분명 진심이 있다.


하지만 그 ‘선함’이 모든 관계에 동일하게 작용한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그것은 가족 한정의 선함, 내 편에게만 따뜻한 온기일 뿐이다.

진정한 선함은 경계를 넘어야 한다.


새로운 가족인 며느리에게도 흘러들어야 그것이 진정한 선이 된다.

그러나 많은 시어머니들은 그 온기를 자신이 세운 울타리 안에만 머물게 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시어머니들은 그 온기를 며느리에게까지 내어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고부갈등은 생겨나게 된다.


아들들은 이 단순한 진리를 마주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에는 여전히 어린 시절 자신을 보듬어주던 ‘엄마의 손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손길이 언제나 모든 사람에게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 온기는 아들을 향해서만 흐르고, 그 외의 사람에게는 차가웠을 수도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어머니는 무조건 선하다’는 믿음은 한 남자의 정체성을 지탱해 온 신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불편하다.


이 세상 어머니들은 수없이 많다. 그들이 모두 선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온기를 며느리에게 흘려보낼 것인가는 시어머니의 선택이며, 그 선택이 바로 한 인간의 선함을 결정한다.

나에게만 흐르는 따뜻함, 내 자식에게만 베푸는 선의, 그것은 진짜 선함이 아니다.

그 따뜻함이 며느리에게까지 닿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어머니는 선한 사람이라 불릴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편들은 어머니가 내어주지 않은 마음을, 아내가 받았다고 믿는다.

또한 대부분의 시어머니들은 자신이 내어주지 않은 마음을, 며느리에게 주었다고 말한다.


어떤 시어머니는 자신이 진심으로 마음을 내주었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의 자기 위안일 뿐이다.


또는 마음을 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면서도, 거짓된 선의로 자신을 포장하는 시어머니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어머니는 가족들에게 말한다.

“나는 며느리에게 내 마음을 다 주었노라.”

하지만 정작 그 마음을 받지 못한 며느리는 그 마음을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그 착각이 아내를 고립시키고, 가정을 분열시킨다.

남편들은 그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실은 잔인하지만, 관계는 그 위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기 전에, 그 온기가 아내에게도 흘러갔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다. 어머니의 행동이 진짜 ‘선함’인지를 확인하기 전에 아내를 탓하지 말았으면 한다.


“선함이란 내 편을 보호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경계를 넘어, 낯선 이를 품을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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