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남편은 아내 몰래 친정에 자주 다녀온다고 한다.
단순한 의무감에서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아내의 부모님께 따뜻하게 안부를 전하고, 작은 선물을 드리러 다녀온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아내는 처음엔 놀랐다고 한다.
남편이 자신의 부모를 그토록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니, 시댁을 향한 시선이 본인도 모르게 부드럽게 변해갔다고 했다.
남편은 아내에게 시댁을 챙기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아내는 자발적으로, 기꺼이 시댁을 챙기고 있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명령이나 강요가 아니라, 보여주는 따뜻함이었다.
그녀와 남편과의 사이는 말할 것도 없이 좋았다.
시댁과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도리어 시댁에 미안한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진심으로 시부모님을 대하게 되어갔다고 하였다.
남편이 보여주는 행동을 자연스럽게 배우면서, 며느리는 시댁에도 똑같이 정성껏 대하고 싶은 자발적인 마음이 스며들었다. 그 결과, 그들의 집에는 다툼이라는 것이 거의 사라졌다.
사소한 것들이 눈에 띄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이제 그것들을 문제로 여기기엔 민망할 정도의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된 듯했다.
그렇게 그들 집의 평화는 남편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는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 보고도 절을 한다’는 옛말처럼, 아내의 부모를 진심으로 존중했다.
남편의 행동은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한다’가 아니라, ‘남편이 현명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한다.’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 같았다.
처가를 향한 그 진실된 예의가, 시댁에도 따뜻한 바람을 불러온 것이다.
그의 행동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의 근원을 존중한 것이었다.
그 마음이 흘러가자, 시댁과 친정, 그리고 본인의 가정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남편의 그 한 걸음이, 결국 두 집안을 향한 온기를 만든 셈이다.
며느리에게 시댁을 아끼라고 강요하는 대신, 아들이 며느리의 친정을 진심으로 아끼고 존중하도록 키워낸다면, 가정은 훨씬 평화로워질 것이다.
아들이 아내의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면, 며느리는 자연스럽게 시댁과의 관계에도 부담을 느끼지 않고,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결국 평화로운 가정은 강요와 의무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서 비롯된다. 시댁을 무조건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대신, 아들이 아내의 가족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길 때, 며느리는 그 사랑과 배려를 느끼며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게 될 것이다.
결국 시어머니는 아들을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하게 키우면 된다.
그렇게 키워진 아들의 배려심과 현명함은 시댁과 친정, 그리고 자신의 가정 모두에 평안을 가져다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약 내 아들이 현명한 남편이 아니더라도, 며느리가 시댁에 진심을 다해 마음을 쏟는다면, 시부모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로또를 맞은 셈이다.
그렇다. 그런 며느리를 둔 시어머니가 해야 할 일은 며느리에게 잔소리하거나 강요할 것이 아니라, 며느리를 통해 아들이 친정에도 잘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돕는 것이다.
결국 시부모가 해야 할 가장 현명한 역할은 아들을 그렇게 키워내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키워내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아들에게 그 가르침을 전하면 된다. 물론,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사람의 마음은 말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보여준 사랑으로 바뀌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