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친절 속 숨은 민낯

by 마음벗

본인 기준에 자신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을 보면, 본능적으로 불편함과 위기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대학 시절, 나는 친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과는 인사를 주고받는 정도였다.


그런데 한 무리의 여자 동기는 나에게 늘 조금 건들거리듯, 묘하게 힘을 주는 태도를 보였다.

어느 토요일,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OO이지?”


“누구세요?”


얼굴 몇 번 본 다른 과 남학생이었다. 도서관에 같이 가서 공부하자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을까?


며칠 뒤, 그 여자 동기가 내게 다가왔다.

“너, 혹시 전화 못 받았어?”


겉으로는 친절하게 묻는 말투였지만, 그 안에는 약간의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그 남학생은 여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학생이 아니었던 것 같다.


“혹시 네가 전화번호 알려준 거야?”

맞다고 대답하며, 그들은 웃으며 말했다.

“걔가 너 좋다잖아.”


나는 순간 불쾌했다. 친절이라는 가면 속에, 그들의 추악한 민낯이 있었다.

그들은 표면적으로 친절을 베풀 듯 행동했지만 마음속에서는 평소 나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표출하며 집단 내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심리가 숨어 있었다.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는 그들에게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친절한 질문과 웃음 뒤에는 은근한 조롱과 통제가 함께 숨어 있었다.

인간은 때때로 친절 속에서 시기심을 감추고, 겉으로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을.

친절과 질투는 서로 대립하는 감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위치와 안정감을 지키려는 심리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결혼 후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32주, 의사 선생님이 아이의 몸무게를 알려주었다.

2kg, 그리고 머리가 조금 크다고도 하셨다.

34주 2.6kg,

36주 3kg,

38주 3.4kg.

초음파 화면 속 숫자는 점점 커져갔다. 처음 임신을 경험하는 나는 ‘작다, 크다’의 기준을 몰라 책을 뒤지고,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다. 검색을 해보니, 확실히 평균보다 큰 편이었다.


남편은 아이가 예상보다 크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이 난 듯 그녀에게 사실을 전했다.

“아이가 너무 크대요.”


그러자 그녀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난 1.3kg에 너를 낳았어.”


그 말이 내 귀에는 의아하게 들렸다. 아이가 커서 걱정이라는 자꾸 말이 나오니 본인은 작게 낳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으셨던 모양이었다.

“1.3kg이면 제때 난 게 아니라, 조금 일찍 태어난 건가? 혹시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던 건가?” 나의 말에

남편도 의아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 내가 1.3kg에 태어났다고?”


그녀의 말은 단순한 사실 전달이 아니라, 자신의 출산 경험이 나보다 더 특별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오래 전의 출산 기억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명확한 것은 나보다 ‘더 나았다’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음을 알았다.


친절이라는 망토를 걸치고 질투라는 속내를 드러냈다.


그렇게 상대를 끌어내리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자신보다 뛰어나거나 돋보이는 사람을 보며 기분 나빠하고, 이유 없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며, 상대의 작은 실수나 단점을 확대하려 든다.


이때 공격의 방식은 매우 섬세하다.

외모, 환경, 말투, 행동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비판하고, 작은 허점을 과장한다.


“피부가 까만 사람들은 때가 많다던데, 정말 그렇네.”

그녀가 나와 목욕탕을 다녀와 가족들 앞에서 한 말이었다.

그녀의 등을 내가 밀어주었고, 내 등을 그녀가 밀어주셨다.

가기 싫었지만 등 떠밀려 가게 되어 겪게 된 대참사였다.

탕에 들어가기 싫어 들어가지 않았다. 자꾸 들어오라고 했지만 거절했다.

내 등에서 때가 많이 나왔는지 솔직히 나는 모른다.

그렇지 않다고 나는 알고 있다.

설사 많이 나왔어도 굳이 가족들 앞에서 말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 즐거웠다.


며느리 등에서 때가 많이 나왔다고 가족들에게 말해서 기분이 좋으신 거 같았다.

창피했지만, 솔직히 시댁 식구들은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들에게는 사소한 일이었고, 나에게는 충격적이 일이었다.


또 다른 어느 날이었다.

남편이 가족들 앞에서 “얘는 다리가 진짜 튼튼해.” 말했다.

그녀는 갑자기 즐거워졌다.

“어쩜 얘 다리 좀 봐.”

“진짜 튼튼하네.” 껄껄껄......

그렇다. 내 발목, 종아리는 다른 신체 부위에 비해 튼튼하다.

다리가 더 건강해 보인다.


그렇게 신체 부위인 피부와 체형을 놀림으로 대상으로 삼았다.

딱히 나는 특별하지도 독특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일부러 사소한 것을 걸고넘어지며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큰 약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진짜로 흠잡을 점이 없다면,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작은 틈새를 찾아 공격한다.

“며느리보다 아들이 집안일을 더 하는 건 싫다. 너도 아들 키우니 내 마음 알지 않느냐.”


그녀의 또 다른 아들이 바쁜 자신의 아내를 대신해 집안일을 많이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의 얼굴에는 불만과 억울함이 섞여 있었다. 그녀의 말속에는 단순한 관찰이 아닌, 오래된 가치관과 비교 심리가 녹아 있었다.

“며느리보다 아들이 집안일을 많이 하는 건 싫다. 너도 아들 키우니 알지 않느냐.”


이 한마디에는 여러 층의 심리가 담겨 있었다.


첫째, 세대적 역할 고정관념이다. 아들은 바깥일, 며느리는 집안일이라는 생각이 깊게 뿌리내려 있으며, 그것이 어긋날 때 느끼는 불편함과 불만은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여겨진다.


둘째, 억울함과 비교심리다. 아들이 집안일을 많이 하니, 자신이 기대했던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불만이 생긴다. 동시에 ‘며느리보다 아들이 더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며, 간접적인 불평을 나에게 투사한다.


마지막으로, 동조 기대다. “너도 아들 키우니 알 것”이라는 말은 나를 동조자로 끌어들여, 자신의 감정을 정당화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자 하는 시도다.

한편 나의 심리는 복합적이었다. 첫 순간에는 당혹감과 압박을 느꼈다.

나를 공감자로 만들려는 은근한 요구는, 내 기준과 가치관을 흔들 수 있었다. 그러나 곧 자각했다. 집안일은 성별이 아니라 역할과 책임의 문제이며, 아들의 참여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는 사실을. 그녀의 억울함과 불만은 내게 향한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가치관과 기대가 충돌하면서 발생한 감정임을 이해했다.

결국, 나는 판단과 반응을 조절할 수 있었다. 그녀의 불만은 그녀의 심리적 문제이지, 나의 잘못이 아니며, 내 아들의 권리와 가치를 제한할 이유도 없었다.

나의 자리는 단단히 선 채, 불필요한 감정 소모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행동은 일견 장난처럼 보일 수 있다.

웃으며, 농담 삼아 건네는 듯하지만 그 속에 숨은 의도는 날카롭다.

상대를 평가하고 깎아내리며, 내적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비열한 시도다.


공격 대상의 허점을 발견하면, 그들은 장난인 척하면서 상대의 마음을 흔들고, 자기 우월감을 드러낸다.

그 장난 뒤에는 언제나 조롱과 비아냥이 숨어 있다.


그런 행동 앞에서 나는 쉽게 흔들렸다.

말이나 표정, 감정으로 반응할수록, 그들은 더욱 즐거워하고, 자신이 상대를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 듯했다.

상대가 내 마음을 흔들고 싶어 하든, 비열한 공격을 장난처럼 가장하든, 나는 더 이상 그들의 전략에 휘둘리지 않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알아갔다.

남의 슬픔과 기쁨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

그들은 사소한 이야기 속에서도 자신이 더 우위에 있음을 증명하려는 말들을 쏟아냈다.

언뜻 단순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가 더 힘들게 살았다’, ‘내가 더 잘했다’, ‘우리 아이가 더 잘났다’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그 속에는 늘 질투가 도사리고 있다.


사소한 대화 속에서도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 보이거나, 반대로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 마음에 걸리는 순간, 경계심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친절한 마음에서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어라, 나보다 더 나은가?” 혹은 “어라, 나보다 못한가?”라는 생각이 들면, 그 민낯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결국 대화가 끝나면 그들은 자신이 남긴 말과 행동에 대해 찜찜함을 느낀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고민까지 따라온다.

그리고 그 불편한 마음을 상대에게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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