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때때로 남의 성공이나 빛나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빛나는 모습은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삐뚤어진 사람들은 불편함과 질투심을 갖는다.
그래서 스스로를 과대 포장한다.
‘나도 빛 나고 싶어.’
그러나 그 빛은 결코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보여주기 위해 애쓰는 모든 노력은 오히려 빛을 가리고, 외형만 강조될 뿐 진정한 가치와 품격은 전달되지 않는다.
진정한 빛은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드러난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는 존재감과 영향력, 그리고 행동 속에서 드러나는 성취가 진짜 빛이다.
반대로 남들보다 우위에 서고 싶어서 하는 행동은, 그 의도와는 달리 본인이 수준 이하임을 드러내는 신호가 된다.
“누가 어디 취직했다더라. 잘난 척이 정말 심해.”
“예전에는 그랬던 사람들이 이제는 제법 살던데.”
“그 집은 원래 그랬던 집이야.”
그래도 우리 집이 나아, 내가 나아
남을 헐뜯어 내가 더 나음을 스스로 확인받고 싶은 모양이다.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한 채, 자기 과시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판단의 기준을 강요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 든다.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얼마나 주관적이고 잘못될 수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떤 기준으로 누가 더 잘났고 누가 못났는지를 알 수 있을까.
겉으로 드러난 성공이나 모습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기준 자체가 잘못된 것이며, 그 기준으로 상대를 재단하는 사람만이 오히려 못난 사람임을 드러낸다.
“내가 어딜 다녀왔어.”
“내가 뭘 샀어.”
“이번에 어디를 갈 거야.”
자신의 행적을 굳이 남에게 말할 필요는 없다.
그런 말들은 사실 자랑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확인받고 싶은 외침일 때가 많다.
여행을 다녀온 것도, 무언가를 산 것도, 새로운 계획을 세운 것도
스스로 기쁘고 만족스럽다면 그걸로 충분히 값진 일이다.
타인의 시선을 빌려야만 빛나는 것은 진짜 빛이 아니다.
가끔 나는 친한 친구를 만나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 친구는 자식이나 남편,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랑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의 빛나는 환경과 삶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는 내가 물어볼 때만 담담히 대답할 뿐, 먼저 자랑하거나 소란을 떨지 않는다.
그의 태도에서 인격의 품격이 느껴진다.
함부로 말하지 않고, 남을 배려하며, 자기 기준이 분명하다.
그래서 더 빛난다.
그런 친구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나는 참 좋았다.
진정한 빛은 소리 내지 않고도 드러난다.
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빛이 나는 사람은 그것을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행동과 존재 자체에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영향력, 주변을 따뜻하게 만드는 에너지, 그리고 결과로 나타나는 성취가 진짜 빛이다.
반면, 자신을 부각시키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우위를 점하려는 태도는, 보는 사람에게 피로감을 줄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진정성을 가리게 된다.
즉, 빛을 말로 강조하는 순간, 그 빛은 자연스러운 가치와 품격을 잃는다.
이 관찰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단순하다.
남을 깎아내리거나 자신을 과시하려는 행동은, 겉보기에는 우월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내적 결핍과 불안, 자기 과시욕을 드러내는 행위라는 점이다.
진짜 빛나는 사람은, 스스로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보여주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알아보고 느낀다.
주변인들의 자기 포장의 도구로 사용되고 싶지 않다.
누구나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있다.
하지만 남의 성공을 나의 실패로 여기면, 결국 자신만 실패자일 수밖에 없다.
나를 포장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남을 끌어내리며 그 위에 서려는 것은, 결코 나를 위로 올리는 일이 아니다.
그저 주변 사람들을 끌어내려, 함께 있는 집단 전체를 망가뜨리는 행위일 뿐이다.
부럽다면 부러워하면 된다.
그 부러움이 질투와 분노로 변해, ‘부숴버리겠다’는 추악한 마음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