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릴 때는 부모의 그늘 아래에서 자란다.
부모가 중심이 되어 아이들을 연결하고, 모아주며, 함께 웃게 만든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하고 결혼해 각자의 가정을 꾸리게 되면 이전의 질서는 자연스럽게 변해야 한다.
여전히 부모가 중심이 되어 자녀들을 모이게 하면 언뜻 보기에는 화목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이 쌓이기 시작한다.
부모가 있을 때만 유지되는 관계, 부모의 부름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만남은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쉽게 끊어진다.
진짜 유대는 부모의 주도 아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 스스로의 의지로 이어지는 관계여야 한다.
부모는 그저 조용히 뒤에서 돕고, 때로는 일부러 한 걸음 물러서서 자식들이 서로 만나고, 대화하고, 웃을 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때 비로소 부모의 존재는 ‘연결자’에서 ‘조력자’로 바뀌며, 관계는 더 단단해진다.
명절이나 가족 모임 때, 동서와 나는 여전히 어색한 사이다.
그래도 서로의 아이들 이야기나, 일상에서 겪은 웃긴 일들을 나누며 조금씩 친해지고 있었다.
둘 다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기에 억지로 가까워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오히려 편했다.
그런데 10분 남짓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이 잠시라도 이어지면, 시어머니는 어김없이 우리를 부르시거나, 우리가 있는 쪽으로 와 앉으셨다.
그러면 대화가 갑자기 끊기고, 시어머니의 질문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우리끼리 공감하는 이야기였기에 그 자리에서는 더 이상 말을 잇기 어려웠고, 약속이라도 한 듯 둘 다 입을 다물었다.
사소한 이야기 하나가 나중에 꼬투리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며느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순간에 시어머니는 며느리 둘 사이의 장벽처럼 버티고 있었다.
그분은 며느리 둘만 이야기하는 순간을 ‘소외감’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사실 며느리들도 서로 가까워지지 않는 것이 더 편하기는 했다.
그래서 며느리들은 어느새, 시어머니 앞에서는 며느리들 간의 대화를 의식적으로 피하게 되었다. 그래도 며느리들은 상관이 없었다.
그 침묵이 시어머니에게는 안심이었을까,
나는 자식들이 서로 어울려 웃을 때, 그 자리에 내가 굳이 끼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들의 대화 속에 내가 없어도 서운하지 않다고.
그것이 진짜 어른의 여유이자 사랑의 방식이라고 믿는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무엇을 해줘야 할까?
형제 사이에는 질서가 필요하다.
첫째는 동생을 챙기고, 동생은 형을 존중하며 예의를 지키는 것
그 기본적인 관계의 틀을 잡아주는 건 부모의 몫이다.
다만 그것이 ‘서열’이 아니라 ‘역할’이어야 한다.
서로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너희는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
그것이 부모가 남겨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많은 부모들이 이 지혜로운 거리를 지키지 못한다.
자식들의 흉을 서로에게 전하거나, 한 자식의 불만을 다른 자식에게 하소연하며 이간질의 불씨를 놓는 경우가 있다.
그 순간 형제의 관계는 조용히 금이 간다.
그리고 부모가 떠난 뒤, 그 금은 서서히 틈이 되고, 결국 단절이 된다.
특히 시어머니가 자주 범하는 실수는 며느리들을 서로 비교하는 일이다.
“누구는 부지런하더라.”
“누구는 손맛이 참 좋더라.”
이런 말 한마디가 관계를 무너뜨린다.
칭찬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분열의 씨앗이다.
며느리에게는 그 며느리만의 개성이 있다.
어떤 이는 손맛이 좋고,
어떤 이는 마음이 세심하며,
또 어떤 이는 조용하지만 묵묵히 제 몫을 해낸다.
그 차이를 비교가 아닌 ‘다양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을 칭찬할 때는 다른 며느리가 없는 자리에서, 오롯이 그 며느리에게만 건네면 된다.
모든 며느리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특정 며느리를 언급하는 것은,
칭찬의 말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받은 선물을 자랑하지 않는 현명함, 그것이 관계를 단단하게 지켜준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많은 시어머니들이 자신의 상처를 자식에게,
자신의 분노를 며느리에게 대물림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그건 어쩌면 자신이 겪었던 불평등을 무의식적으로 되갚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그 어머니는 사랑의 이름으로 또 다른 상처를 남긴다.
자식들 사이의 평등은 결국 어머니의 언어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를 비교하지 않고,
누군가의 부족함을 드러내지 않는 말.
그 말이 가정을 평화롭게 지킨다.
“누가 더 잘하냐?” 이 질문은 화를 부르고,
“각자 수고한다.” 이 한마디는 평화를 부른다.
가족의 조화는 위대함에서 오지 않는다.
그저 공평한 말 한마디, 따뜻한 눈빛 하나, 그리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나는 그런 어머니이고 싶다.
모든 자식이 나를 두려워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응원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사람.
“부모의 말은 형제의 마음을 잇는 다리이기도 하고, 때로는 관계를 끊는 칼이 되기도 한다. 나는 다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