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정말 신기할 정도로 시댁과 잘 지내는 지인이 있다.
시댁 이야기가 나오면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표정에도 ‘시댁이 왜?’라는 무심함이 묻어난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먼저 시댁에 가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한다고 한다.
그런데 남편은 집에서 쉬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혼자 아이를 데리고 시댁에 가기도 한다고 했다.
놀랍지 않은가? 시댁이 멀리 있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스스로 찾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이유를 더 들어보니 이해가 되었다. 김장하는 날, 시댁은 그녀에게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날이라고 했다.
시부모님 주변에는 친척분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했다. 그분들이 함께 김장을 담그는 것이다.
그래서 매번 그녀에게는 방에서 아이를 돌보며 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쉬는 동안에도 김장김치, 수육, 과일, 고구마 등 온갖 음식이 방으로 들어왔다.
시어머니는 매우 활달하며 늘 바빴고, 눈치를 주거나 어떤 것도 간섭하지 않았다. 그저 편히 쉬라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시댁에 가면 시부모님은 아이들을 봐주고, 며느리가 마음껏 쉬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덕분에 그녀는 전혀 미안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편하게 쉬게 하려는 시어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된 것이다.
말도 많이 시키지 않고, 아이들을 챙기며 놀아주니 그곳은 며느리에게 천국과 같았다.
하지만 이 시댁이 며느리에게 언제나 개방된 공간은 아니었다.
시부모님들은 늘 바쁘고, 자신들만의 세상이 있었다. 여행, 모임, 일상의 활동이 존재했기에 며느리는 특별한 날에만 그 공간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항상 시댁에서 그녀는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제한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조용히 쉬며 즐거움을 느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의 표정에서 진심을 보았다. 시댁에 대한 감정이 전혀 묻어나지 않았다.
그 깨끗한 태도와 마음이 진짜임을 직감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바라는 미래의 모습, 내가 되고 싶은 시어머니의 모습은 바로 이런 것이다.
며느리와 잘 지내는 방법은, 애써 다가가거나 친딸처럼 만들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딸처럼 가까이하려는 시도나 지나친 친근함은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며느리 자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였다.
또한 며느리가 진정으로 시댁에서 편하게 지냈으면 하는 진실된 마음이 가장 핵심이었다.
며느리가 선택하고 경험하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 행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잘 지내는 길’이다.
이 깨달음은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다.
말로 가르치거나 훈계하지 않아도 된다. 간섭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그들의 삶을 그대로 믿어주는 것. 그것이 며느리와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이다.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한다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자식의 배우자로 존중하고, 멀리서 지켜보며 응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시어머니가 되어야, 관계는 건강하게 유지된다.
나는 그렇게 며느리와 잘 지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