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이들은 아직 어리다.
손주를 본다는 것은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손주란 어떤 존재일지, 어렴풋이 상상해 보면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직접 양육하지 않으므로, 자주 볼 수는 없을 것이고, 작고 귀여운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떠오를 것이다.
마냥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일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손주는 사랑스럽더라도, 훈육과 교육은 부모의 몫이다.
내 방식이 아닌 그들 방식으로 자라게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경험으로 이미 배웠다.
아이를 키울 때 어설퍼 보이고 위태위태해도, 거기에 훈수를 두는 것은 금물이다.
세상은 변하고 육아법도 변한다.
과거의 방식이나 습관을 강요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오히려 무지에서 나온 행동일 뿐이다.
내가 직접 돌보지 않는 이상, “나 때는 그랬다”며 강요하거나 지시하지 않아야 한다.
설사 잠시 아이를 봐주는 경우라도, 그들의 양육 방식을 따르는 것이 옳다.
손주는 그들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도 나에게 밑도 끝도 없이 가르치려 드는 통에 곤욕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아이마다 체질과 성격, 성장 속도는 모두 다르다.
삼 형제를 키워본 나조차, 같은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부모는 그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며 성장한다.
실수와 실패를 거치며 부모가 되고, 그 과정 속에서 아이와의 관계와 추억이 만들어진다.
시어머니는 그것을 가로챌 권리가 없다.
그렇기에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는
“이 방법을 써보라”거나
“이건 틀렸다”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찾아가는 길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시행착오와 고민, 경험은 아이와 부모 사이의 추억과 연결로 남는다.
그 경험을 지켜보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사랑임을 안다.
“자녀는 그들의 아이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키우고, 부모는 그 길을 믿고 지켜볼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