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에게 아들이 있다.
나에게는 조카인 셈이다.
명절이면 언니의 시댁도 여느 집처럼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함께 음식을 했다. 유독 손이 큰 시어머니는 항상 많은 양의 음식을 준비했고, 특히 전을 부치는 일은 몇 시간씩 이어졌다.
온 집안이 기름 냄새로 가득 차던 어느 날, 마무리가 되어갈 무렵 조카가 엄마에게 말했다.
“이제 집에 가자, 엄마!”
언니는 정리만 하고 가자며 아이를 달랬다.
그러자 조카가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가 다 꺼내고 저질렀으니까, 할머니가 다 치워야지.”
순간 가족들은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아이의 말이 단순하지만, 어딘가 묘하게 진실을 찔렀다.
언니 입장에서는, 참으로 속 시원한 효자 아들이었다.
세월이 흘러 조카는 중학생이 되었다.
조카는 엄마의 표정과 말투를 세심히 살피며, 다정한 말로 위로를 건넬 줄 아는 자상한 아들로 성장했다.
어느 날 언니가 조카에게 물었다.
“우리 아들, 나중에 운전면허 따면 엄마 태워줄 거야?”
조카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엄마는 버스 타거나 아빠 차 타.
나는 내 마누라 태워야지.”
언니는 그 말을 듣고는 웃으며 말했다.
“얘 좀 봐라. 벌써부터 자기 마누라 먼저 챙기네. 제대로 컸구만. 잘 살겠다.”
그 말에는 섭섭함이 아니라 흐뭇함이 담겨 있었다.
진짜 효자란, 엄마 곁을 떠날 준비를 잘하는 아들이라는 걸 언니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의 최종 목표는 너를 멋진 어른으로 키워서, 집에서 내보내는 거야."
이렇게 언니는 조카에게 어려서부터 계속 말했다고 한다.
맞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아들보다, 자신의 가정을 온전히 지켜내는 아들이 진짜 효자다.
그것이 내가 키워내고 싶은 아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가끔 나는 아들에게 묻는다.
“너, 혹시 나랑 너희 마누라랑 의견이 안 맞으면 어쩔 거야?”
큰아들이 주저 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마누라 편이지.”
그 대답에 나는 웃었다.
그래, 역시 내 아들이구나.
“맞아. 무조건 네 마누라 편해야 해. 네가 네 아내와 잘 지내야 그게 결국 나에게도 좋은 일이야.”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네가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을 난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어
그러니 나중에 네가 결혼을 하게 되면, 너의 가족들에게 마음껏 네 사랑을 보여주었으면 해.’
‘네가 결혼 후 나에게 섭섭하게 행동을 하더라도, 그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거라 생각할게.
설사 나를 잊는다고 한들, 그것이 무엇이 문제겠어 나는 여전히 너를 깊이 아끼고 사랑하고 있을 테니까.’
“진짜 효자는 엄마 곁에 머무는 아들이 아니라,
언젠가 자신만의 가족을 책임질 줄 아는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