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초, 늦은 저녁 남편의 전화가 울렸다.
시어머니였다. 전화의 이유는 황당했다.
치킨을 먹으려는데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남편도 모른다며 전단지를 찾아보라 했다.
시간이 남아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자식에게 전화 한 통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신 것이다. 마음이 허전했던 걸까.
함께 사는 남편과 아들이 있음에도, 굳이 같이 살지 않는 자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식과 항상 함께였기에 생활의 경계가 없었다.
그 한 통의 전화, 말 그대로 사소한 일이었지만 반복되면 마음을 묵직하게 만들고, 우리만의 시간을 침범했다.
벚꽃철이 되었을 때, 시어머니는 역시 함께였다.
곁에 살다 보니, 우리끼리 벚꽃 구경을 갈 수는 없었다.
매번 모시고 다녔다. 처음에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여행과 소풍, 산책, 심지어 집에서 삼겹살 하나를 구워 먹어도, 외식을 해도 시부모님과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사진첩을 뒤적여보면, 우리만의 순간은 없었다. 시어머니와 함께한 순간들만이 가득했다.
아무리 즐거운 여행도, 문득 마음 한편에 ‘또 시부모님과 함께’라는 부담이 생겼고
그 부담 때문에, 가고 싶은 곳도 마음껏 떠올릴 수 없었다.
결국 나의 7년이라는 시간 속, 모든 순간에 시어머니가 함께 있었다. 며느리의 30대는, 자신만의 시간이 아니라 시어머니의 시간이기도 했다.
50대 후반의 시어머니는 말한다.
“이제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말에는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미련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며느리의 시간 또한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다.
나의 서른의 봄도, 어린 아들과 남편과 함께할 수 있었던 그 시간도, 단 한 번 뿐이었다.
어머니의 남은 생이 소중하듯, 며느리의 청춘도 한 번뿐이다.
조금만 양보해 주셨더라면, 나 역시 내 가족만의 추억을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 모든 순간에 꼭 함께해야 했을까.
7년 만에, 우리 가족만의 1박 2일 첫 여행이 있었다.
그 짧은 여행이 나에게는 설렘이었지만, 시어머니에게는 커다란 배신이었다.
여행 중 남편의 전화기에 시어머니의 이름이 떴다.
그녀는 서운함을 숨기지 못한 채,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우리를 빼놓고 가니?”
그 말에는 분노보다 더 깊은, ‘당연히 함께해야 한다’는 확신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확신이 늘 의문이었다.
정말, 왜 당연히 함께여야 하는가?
함께하지 않으면 불효이고, 함께하면 의무를 다한 것인가?
며느리의 삶과 시간은 언제나 ‘함께해야 한다’는 규범 아래 묶여 있어야만 하는가?
배려가 한두 번은 고마움이지만, 반복되면 ‘당연한 일’이 되어갔다. 그리고 ‘당연함’이 자리 잡는 순간, 관계는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적당한 무관심과 거리는 관계를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
자식이 스스로 삶을 꾸리고, 스스로 선택하고 경험하게 두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부모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 자녀들이 부모의 삶을 존중하게 된다.
부모의 선택을, 공간을, 시간을 존중하게 된다.
부모에게는 기다림이 필요하고, 자식에게는 자유가 필요하다.
사랑은 관심과 간섭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다.
적당한 거리 두기, 때로는 ‘바쁘게 살아주는 척’만으로도 건강한 관계는 유지된다.
나는 이제 안다.
자식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는 것,
그들의 세상을 존중해 주는 것,
그것이 시어머니로서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사랑은 곁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나머지는 기다림과 믿음으로 남겨두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