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했던가. 영화는 미소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보여주되 그것의 비극성은 의도적으로 거세한다. 시종일관 따뜻하고 유니크한 미소를 앞세워 현실의 무게를 덜어낸다.
출처:네이버 영화
불행에 가라앉은 쪽은 오히려 미소가 방문하는 대상이다. 영화는 미소의 비극으로 시작되는가 싶더니 그 위로 미소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불행을 차곡차곡 쌓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미소의 이야기를 보았다기보다 미소가 찾아가 위로를 전한 각각의 밴드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한 셈이다.
미소는 자신이 가진 '홈리스'라는 한 층위의 비극으로 그들의 불행을 포용한다. 마치 위로를 전하는 목적을 가진'찾아가는 서비스'(살아있는!)인 것처럼그들의 마음을 살피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메스꺼워진 현실을 치워준다. 즉,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건 소위 말하는 방 한 칸의 '안정'을 갖지 못했던 미소의 여유로운 넉넉함이었던 것이다. 영화의 휴머니티는 이렇듯 미소라는 프리즘을 매개해 러닝 타임 내내 반짝인다.
출처:네이버영화
민지의 방을 청소해주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던 미소는 민지의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 탓에 마지막 일자리를 잃게 된 상황에서도 민지를 먼저 걱정해주는 따스함을 보인다. 그 어떤 편견도, 판단도 걷어내고 투명하고 맑은 시선으로 민지를 바라봐 준다. 어떠한 상황이든 밥은 먹었냐고 물어봐 주는, 제 잘못이 아님에도 미안하다 말해주는 이 연대가 참 마음에 든다. 또한 제 스스로 헛되다 말하는 희망을 두고 결코 헛되지 않다고 말해주고 또 믿어주는 이 단단(든든) 함이 참 마음에 든다.
대한민국에서 집, 학위, 돈 없이 산다는 것
미소의 내일이 궁금하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것은 위의 세 가지 사항이 결핍된 채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주 희미하게나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극의 말미에 이르러 완전히 은발이 된 미소의 얼굴을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 건, 미소의 얼굴에 새겨진 쓸쓸함 앞에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 관객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미소의 머리칼을 다 세게 한 가난보다 6번이 없는 미소의 선택지가 더 절망스럽다는 것을 영화는 이미 안다. 결국에는 선택지에 없던 "누구에게도 갈 수 없음"을 선택해야 했던 상황의 그 고독한 쓰라림.
그렇기에 카메라는 미소를 아주 멀찍이서만 비춘다. 그와 우리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는 듯, 거스를 수 없는 차디찬 공기의 흐름 앞에 쓸쓸히 침묵한다. 작디작은 미소가 제 공간을 빛으로, 온도로 채우는 순간에도 우리는 살을 에는 듯한 냉기에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웅크리며 손을 꽉 쥔다. 이 '어쩔 수 없음'을 이고 살아가는 우리는 안전하게, 불행하다.
떠도는 사람에게도 생각은 있고 취향은 있다는 말. 돈은 없어도 마음은 있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