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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월 Jun 28. 2020

<소공녀>

껍데기의 만석, 영혼의 공석. 거기, 자리 있습니까?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했던가. 영화는 미소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보여주되 그것의 비극성은 의도적으로 거세한다. 시종일관 따뜻하고 유니크한 미소를 앞세워 현실의 무게를 덜어낸다.

출처:네이버 영화

불행에 가라앉은 쪽은 오히려 미소가 방문하는 대상이다. 영화는 미소의 비극으로 시작되는가 싶더니 그 위로 미소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불행을 차곡차곡 쌓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미소의 이야기를 보았다기보다 미소가 찾아가 위로를 전한 각각의 밴드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한 셈이다.


미소는 자신이 가진 '홈리스'라는 한 층위의 비극으로 그들의 불행을 포용한다. 마치 위로를 전하는 목적을 가진 '찾아가는 서비스'(살아있는!)인 것처럼 그들의 마음을 살피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메스꺼워진 현실을 치워준다. 즉,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건 소위 말하는 방 한 칸의 '안정'을 갖지 못했던 미소의 여유로운 넉넉함이었던 것이다. 영화의 휴머니티는 이렇듯 미소라는 프리즘을 매개해 러닝 타임 내내 반짝인다.

출처:네이버영화

민지의 방을 청소해주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던 미소는 민지의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 탓에 마지막 일자리를 잃게 된 상황에서도 민지를 먼저 걱정해주는 따스함을 보인다. 그 어떤 편견도, 판단도 걷어내고 투명하고 맑은 시선으로 민지를 바라봐 준다. 어떠한 상황이든 밥은 먹었냐고 물어봐 주는, 제 잘못이 아님에도 미안하다 말해주는 이 연대가 참 마음에 든다. 또한 제 스스로 헛되다 말하는 희망을 두고 결코 헛되지 않다고 말해주고 또 믿어주는 이 단단(든든) 함이 참 마음에 든다.




대한민국에서 집, 학위, 돈 없이 산다는 것


미소의 내일이 궁금하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것은 위의 세 가지 사항이 결핍된 채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주 희미하게나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극의 말미에 이르러 완전히 은발이 된 미소의 얼굴을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 건, 미소의 얼굴에 새겨진 쓸쓸함 앞에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 관객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미소의 머리칼을 다 세게 한 가난보다 6번이 없는 미소의 선택지가 더 절망스럽다는 것을 영화는 이미 안다. 결국에는 선택지에 없던 "누구에게도 갈 수 없음"을 선택해야 했던 상황의 그 고독한 쓰라림.

그렇기에 카메라는 미소를 아주 멀찍이서만 비춘다. 그와 우리 사이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는 듯, 거스를 수 없는 차디찬 공기의 흐름 앞에 쓸쓸히 침묵한다. 작디작은 미소가 제 공간을 빛으로, 온도로 채우는 순간에도 우리는 살을 에는 듯한 냉기에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웅크리며 손을 꽉 쥔다. 이 '어쩔 수 없음'을 이고 살아가는 우리는 안전하게, 불행하다.

떠도는 사람에게도 생각은 있고 취향은 있다는 말. 돈 없어도 마음은 있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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