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말랑해 지고 싶은데요

화초 집사의 겨울 독백

by 이혜원



깊고 깊은 겨울 한자락에 나는 서 있다.


마음을 젖은 솜 속에 깊숙이 넣어둔 것 같은 기분이다. 베란다 창틈으로 간간이 바람소리가 새어 들어온다. 차분해지는 이 기분도 나쁘지는 않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을, 내가 은밀히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탁기 위에 올려둔 나의 작은 정원에 물을 듬뿍 주면서, 문득 여러 사람들이 생각났다. 친구, 동서, 동생... 나는 역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자연에 위로받고,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과 분위기에, 맛있는 음식에 위로받는 것. 그 모든 것 아래에는 늘 내가 사랑하는 지인들이 있었다는 것을, 오늘따라 마음 깊이 느낀다.


나는 전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말랑하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고.


빠르게 변해가는 이 시대, 모든 변동이 사람의 마음까지도, 입장까지도 바삐 움직이게 하는 시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는 버겁지만, 그래도 나는 유연하고 넓게 받아들이며 살고 싶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게 마음처럼 되어지지 않는다.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깊이 있게 이해해주지 못하는 나의 마음과 모습이 못내 스스로 서글프다. 진짜 내 마음은 말랑한 사람이 아니고, 매우 딱딱하고 정해져 있어야 하며, 아집 있는 나인가 보다.


깊고 깊은 겨울 어느 날, 나의 작은 정원 화초에 물을 주며, 나는 또다시 마음을 말랑하게 잡아본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조금씩이라도 괜찮다고.


겨울은 깊지만, 물은 여전히 따뜻하고, 작은 잎들은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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