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다낭

딸과 함께 간 미케비치, 그리고 우리가 나눈눈물

by 이혜원



출발 전날 밤, 88만 원의 충격

설날 명절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딸에게서 예상치 못한 연락이 왔다. "엄마, 캔슬 땡처리 티켓 있대. 푸꾸옥 어때?" 그러더니 다음 카톡에는 '다낭'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당연히 땡처리 티켓, 편도 20만 원짜리 저렴한 비행기라고 굳게 믿었다. 남편도 나도 설마 했는데, 알고 보니 인당 88만 원. 명절 성수기 정가였다.
딸이 보낸 카톡을 뒤늦게 다시 들여다보니, 비행기 스케줄 캡처 사진 두 장 사이에 딱 두 글자, '88'라고만 적혀 있었다. 그 숫자가 그냥 숫자인 줄 알았다. 우리 부부가 놓친 건 그 두 글자였다.
전날 밤 11시, 예약 완료 문자를 받고 나서야 실제 금액을 알게 됐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딸에게 조용히 전화를 걸어 말했다. "아버지한테는 그냥 40만 원이라고 하자. 20만 원이라고 했다가 들키면 더 민망하잖아." 울며 겨자 먹기로 맞춘 우리 모녀의 첫 번째 합의였다.


그래도 왔다, 미케비치로

사실 나는 다낭이 처음이 아니었다. 5년 전, 동생과 함께 다녀왔었다. 그때 미케비치 숙박은 꿈도 못 꿨고, 루프탑 수영장도, 해변을 한가로이 걷는 것도 모두 못 하고 돌아왔다. 딸은 그걸 알고 있었다. "엄마, 아빠랑 나랑 셋이서 같이 가자"는 말을, 딸은 몇 년 동안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그 마음을 알기에, 내키지 않아도 따라나섰다. 5성급 호텔 예약까지 딸이 해놓았다는 소리를 듣고는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지만, 막상 도착해서 짐을 풀고 발코니에서 미케비치를 바라보는 순간, 가슴 한쪽이 조용히 녹아내렸다.
바나힐은 비싸고 또 가봤다 싶어 혼자 빠졌다. 딸과 남편이 올라가는 동안 나는 혼자 종일 해변에 앉아 바다를 보았다. 아무것도 안 해도 좋았다. 루프탑 수영장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등을 물에 맡길 때, 5년 전에 못 하고 갔던 것들을 이제야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충만했다.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정말, 그걸로 충분했다.


한 리버에서 반짝인 밤

그날 저녁, 딸이 "엄마, 오늘은 특별한 저녁이 있어"라고 했다. 어디냐고 물으니 그저 환하게 웃기만 했다. 한 리버 크루즈였다.


배에 오르자, 화려한 다낭의 빌딩 조명들이 강물에 비쳐 반짝거렸다. 용다리를 지나고, 사랑다리를 지나며, 강바람이 머리카락을 쓸고 갔다. 딸이 준비한 깜짝 선물이었다. 고급스러운 저녁 코스가 하나씩 나왔고, 배 위에서는 작은 공연까지 펼쳐졌다.


남편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이것까지 준비했어?" 딸은 그저 "엄마 아빠랑 같이 와서 좋아"라고 했다. 그 한마디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강 위로 흐르는 밤바람과 함께, 우리 셋의 웃음소리도 흘러갔다. 화려한 빌딩 조명 아래에서 찍은 사진 속 딸의 얼굴이 너무 예뻤다.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아니, 잊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나중에야 알았다. 이 크루즈도, 호이안 소원 배도, 5성급 숙소도, 전부 딸이 몇 달 전부터 꼼꼼히 알아보고 준비한 것이라는 걸. "엄마 아빠 모시고 가는 여행인데 대충 가면 안 되잖아" "같이 와 줘서 감사해요" 딸의 그 한마디가, 지금도 머리를 감을 때마다 가슴 시리게 떠오른다.



호이안의 밤, 소원 배 위에서

딸이 마지막 날 일정을 직접 짰다. 호이안 소원 배 타기, 마사지, 그리고 아무도 예상 못 한 맛있는 저녁 식사까지. 강물 위에 꽃잎 모양 등불을 띄우며 소원을 빌었다.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는 말 못 하겠지만, 눈이 촉촉해졌던 건 사실이다. 그 밤의 호이안은, 꿈처럼 흘러갔다.


마지막 날, 우리는 서로에게 울었다
여행 마지막 날, 베트남 설날과 겹쳐 차가 막혔다. 뜻하지 않게 들른 절에서의 짧은 체험은 오히려 특별한 기억이 됐지만, 영흥사는 결국 못 갔다. 더위 속에 가게마다 문은 닫혀 있고, 일정은 엉망이 됐다. 나는 짜증을 조금 냈다.
딸이 부랴부랴 마사지 가게를 검색했다. 남편은 귀 청소를 하러 가자고 했다. 나는 "싫다, 둘이 갔다 와라"고 했다. 그 순간, 33살 딸이 눈물을 터뜨렸다.
"엄마는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그러면서 왜 왔어?!"
맞았다. 나는 당황했다. 남편은 묵묵히 자리를 피해줬다. 딸과 나 단둘이 앉아, 서로 조금씩 털어놓았다.
딸의 속마음은 이랬다. 바나힐도 혼자 보내고, 소원 배도 혼자 탔고, 밥도 배부르다며 덜 먹고. 엄마와 아빠, 셋이서 처음 떠난 여행인데, 뭔가 함께 하고 싶었던 것들이 자꾸 엇나갔다는 것. 베트남 설날 탓에 일정이 와르르 무너진 것도 혼자 삭이고 있었다는 것. 거기다 마사지마저 엄마가 변심하니, 그간 쌓였던 게 한꺼번에 터진 것이었다.
나의 속마음은 이랬다. 다낭에 같이 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5년 전 못 했던 것들을 이번에 하나씩 채웠으니 그걸로 이미 배가 불렀다. 비싼 마사지 하나쯤 안 해도 이 여행은 충분히 행복했다. 근데 딸 눈에는, 엄마가 자꾸 빠지는 것처럼 보였던 거다.
딸의 따뜻하고 서툰 배려. 엄마와 아빠를 생각해서 영흥사를 마지막 날로 미룬 것도, 무리할까 봐 일정을 조금씩 빼준 것도. 다 딸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몰라서, 나도 눈물이 났다.


지금, 미케비치에서
결국 마지막 저녁은, 셋이서 맛있게 먹고 웃으며 마무리했다. 마사지는 딸과 남편 둘이서 가고, 나는 여기, 내가 사랑하게 된 미케비치에 혼자 앉아 있다.
파도는 쉬지 않고 밀려온다. 저녁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든다. 88만 원짜리 비행기, 5성급 호텔, 엉망이 된 일정, 뜻밖의 눈물까지. 우여곡절이라는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여행이 또 있을까.
근데 있잖아. 그 모든 우여곡절이 모여서, 이 여행이 되었다. 딸이 몇 년을 조르고 조른 '우리 셋만의 여행'이.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래서 더 우리다운 여행이 되었다.
나는 함께 온 것만으로 감사하고, 딸은 함께 하고 싶어서 울었다. 그 두 마음이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는 걸, 미케비치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이제야 제대로 알 것 같다.
2026년 설날, 다낭 미케비치에서


딸에게 엄마가

네가 눈물을 터뜨렸을 때, 그 덕분에 엄마가 비로소 알았어. 네가 단순히 여행이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엄마 아빠와 함께 웃고 싶었던 거라는 걸

33살이 되도록 엄마 아빠와 여행 가고 싶다고 조르는 딸을 가진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복 받은 사람이야.


다음에 또 가자. 이번엔 엄마가 마사지도 같이 받을게.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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