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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은영 Apr 26. 2019

14.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서평)

떠난 이들을 추억하며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끔 어떤 존재에 관해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기회를 얻곤 한다. 가령 아이를 낳고 나서 비로소 엄마의 마음에 가 닿거나, 아빠처럼 가장 노릇을 하고나서 아빠의 절박함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이해와 공감이 늘 뒤늦게 찾아 온다는 것이다. 깨달고 나면 우리가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지만 선명하게 각인되고 만다.

이 책의 저자 박애희님은 엄마와 아빠를 차례대로 잃었다. 여느 부모님처럼 자식들 뒷바라지를 위해 헌신했고, 가끔은 삶의 퍽퍽함에 치열하게 싸우기도 했던 분들이다. 그런가하면 자식들을 통해 대리 만족을 얻었고, 자식들이 자신들처럼 살지 않도록 격려했다. 작은 일에도 행복해했고, 불쌍한 존재를 보면 기꺼이 가슴으로 안았다. 지극히 평범했던 분들이었고, 그 평범함 때문에 동시에 우리의 부모님 같기도 하다.

이 책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노 라면 절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너무 가까워서, 혹은 너무 사랑해서 차마 꺼내 놓을 수 없는 말들이 많다는 것에 진심으로 공감한다. 실연의 상처도, 실패의 고통도, 마음의 부담도 선뜻 꺼내기가 힘들다. 가족들이 깊이 공감할까봐. 너무 깊이 공감해서 내 아픔을 오롯이 함께 느낄까봐. 

나도 아이를 낳을 당시 이미 엄마가 돌아가시고 없었다. 극심한 산통에 정신이 희미해지는 순간들이 찾아왔었다. 엄마들은 도대체 어쩌자고 이런 고통을 여러 번 반복했던것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첫 외출을 나갔을 때 나도 저자처럼 우두커니 서서 울고 싶었다. 한 친정엄마가 손녀를 보물처럼 안고 있었고, 딸은 옆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건네며 걸어가고 있었다. 부러웠다. 그 정다움이. 질투를 불러 오는 밝은 빛이 그들만 에워싸고 찬란하게 반짝였다. 외롭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질투란 무엇인지, 그 길에 서서 나는 쓸쓸히 느끼고 말았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 남겨진 자들의 슬픔같은 걸 곱씹으면서 열심히 밥을 먹는다. 떠난 그들의 빈자리를 보고 있노라면 밥이 넘어가겠나 싶다가도 어느 순간 살아갈 이유를 악착같이 찾아 내고야 만다. 

이 책의 후반부에 실린 물리학과 별에 관한 대목에서 나는 머리가 뻥 뚫린듯 시원해졌다. 별의 원자와 인간의 원자가 다르지 않을거라는 것, 원자들이 모여서 인간을 만들었다 흩어지는 것이 죽음일 수도 있다는 것, 그럼 그 흩어진 원자들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다른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우리는 인간의 형태로, 미리 떠난 이들은 다른 형태로,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마음 한켠이 그나마 덜 차갑지 않을까?
그리고 결국엔 우리도 떠난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겨볼 수 있을테다. 나에게 남은 과제는 어제보다 한 뼘이라도 나은 오늘을 만드는 것 뿐이다. 마음 속 깊이 떠난 이들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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