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 블라인드>라는 청소년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7명의 작가들이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 이를테면 원조 교제, 임신, 미혼모, 도박 중독, 몰카 범죄, 자살, 스토킹, 성추행 등을 단편 소설로 엮은 책이었다. 스토리 구성이나 재미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용 자체가 자극적이고 다소 충격적이어서 현실감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가출 청소년들이 어플을 이용해 간단히 성매매를 하고, 어플로 만난 남성이 자신의 집에서 머물게 해주며 그루밍을 시도한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그야말로 '존재하지 않는 현실'처럼 느껴졌었다.
어제 오랜만에 지인을 만났다. 그녀는 최근에 이직을 했는데, 전공을 살려 '가출 청소년 쉼터'에서 상담사로 일한다고 했다. 사회 복지와 관련된 일들을 해오던 그녀였기에 늘 고된 에피소드를 풀어내곤 했었다. 그러니 이전의 일들보다는 청소년 상담이 여러모로 훨씬 쉽고 편하지 않느냐고 내가 무심히 물었다.
그녀가 들려준 에피소드들은 참 놀랍고 경악스러웠다. 성매매를 밥 먹듯이 하는 청소년들, 중간에서 그 돈을 갈취하는 친구들, 가출 청소년들이 혼숙을 하는 집, 가족으로부터 도망 다니는 청소년들까지...
난 문득 깨달았다. <세븐 블라인드>는 현실을 그나마 순화해서 담아낸 소설이었다는 걸.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했다면 너무 참혹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을거란 걸.
가끔 우리는 드라마를 보며 '드라마니까 가능한거지.'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현실은 더 드라마같고, 소설같다.
내가 물었다. "그런 부정적인 상황들을 반복적으로 보고, 경험하다 보면 우울해 지거나 부정적인 생각들이 들진 않나요?"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주일마다 교회에 가요. 그마저 없으면 큰 일 나죠."
그래, 몸의 건강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마음의 건강이다. 가끔은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낀다는 그녀가 주일에는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