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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정 May 18. 2023

엄마의 레시피


한 번씩 뜬금없이 받는 전화가 있다.

“엄마, 콩나물 삶을 때 뚜껑 열어요?”

“엄마, 불고기 간장은 어떤 간장을 써요?”

9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아들이 한 번씩 하는 전화 내용이 이렇다.

집 때문에 결혼식을 올리기 전 4월부터 합가를 한 아들인데, 살림을 담당하고 있는 걸까. 

요리를 아들이 하는 것 같아서 마음 한쪽이 불편하다. 그렇지만 노코멘트!

다른 사람의 아들이 우리 집에 와서도 그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딸이 둘이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든든한 위로가 되는 순간인지 모른다.

평소 요리를 즐겨하는 편은 아니다. 

아이들 어렸을 때는 김밥 한 줄도 꼭 직접 만들어 먹였는데 요즘은 그냥 모이면 무조건

 “뭐 먹을까? 거기 맛있다던데 가봤어? 우리 거기 가보자.” 라며 서둘러 외식하자고 몰이를 한다. 

집에서 요리하는 것은 고사하고 며느리 될 아이에게 정돈되지 않은 집을 보이기 싫어서 이기도 하다. 


나름 손맛이 있다는 이야기도 곧잘 듣고 요리하는 속도가 있어서 집에서 손님맞이도 자주 했던 시절도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아이들이 집을 떠나고 주방에 들어가는 횟수가 줄면서  요리할 때마다 맛이 다르게 되고 혼자 먹자고 입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  적극적이 되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런 엄마에게 큰딸은 가끔 내려와서 집밥을 먹으면서 “엄마는 어떤 때는 맛있고 어떤 때는 건강한 맛이고 그러네? 비결이 뭐예요?” 라며 놀린다.

레시피도 기억이 안 나고 음식을 만들 때마다 일관된 맛 내기가 달라서 난감한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일을  반복하면서 생각해 낸 방법이 있다. 

음식을 만들고 나서 작은 수첩에 정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본 반찬과 국을 끓이는 레시피 책이다. 물론 인터넷 검색하면 뚝딱 나오는 요리 레시피들이 있다. 그렇지만 엄마의 요리는 유일한 것이라 생각하고 만들어 둔 미니 노트가 한 권 있다.


<엄마의 레시피> 나만의 비법으로 만들었다고 하긴 그렇지만 만들었을 때 맛있게 먹어준 식구들의 입맛을 기억하고 종이에 기록한 핸드메이드 레시피 북이다.

딸들이  시집가면 주려고 만들어 놓은 <엄마의 레시피 >. 미니 핸드북을 기록할 때만 해도 그냥 별생각 없이 기록했는데 이렇게 시간이 지나 새로운 세상이 되고 보니 작은 것 하나도 놓쳐지지 않는다. 

누렇게 변하고 얼룩진 수첩도 추억이 담겨 좋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요리를 한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해 낸 것이  미니 핸드북으로 요리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까지 이른 것이다.

 

어제는 예배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큰 딸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  콩불이랑 제육볶음 해서 보내주실 수 있어요?”  “그래라.”  

조금은 귀찮은 생각도 순간 들었지만 서울에서 혼밥 먹으며 직장 다니느라 고생하는 딸의 입장이 한번 되어보니 또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돌려 시장으로 갔다. 

콩나물, 대패삼겹, 앞다리살, 팽이버섯, 양파를 사들고 부랴부랴 조리대 앞에 선다. 

내일 아침 일찍 택배 보낼 생각에 마음이 분주하다. 

고기랑 사서 해 먹어 보라고 하고 싶었지만 모처럼 전화 한  딸의 마음이 오죽할까 싶은 생각에 마음이 바빠진 것이다. 만들고 식혀서 냉동실에 얼려야 내일 우체국 택배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말 오후를 보내고 책상에 앉는다. 

딸의 전화 덕분에 오후 일정이 모두 뒤죽박죽 되었지만 덕분에 주방에서 추억소환하면서 엄마놀이를 했다.

택배를 받고 좋아할 딸의 얼굴을 생각하니 두 시간 남짓의 동동거림이 설렘으로 남는다. 

음식은 함께 먹어야 맛있다고 하는데 비록 혼자 먹는 밥이지만 엄마가 만들어 보냈다는 것만으로 함께 먹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맛있게 먹고 건강하게 잘 지내주길 바란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딸이 엄마가 되는 때가 올 것이다. 엄마가 없는 혼자엄마가 되었을 때의 딸을 상상하며 <엄마의 레시피> 미니 핸드북이 완성될 날을 기다린다. 

딸들이 <엄마의 레시피> 책을 보고 요리를 해서 가족과 함께 먹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살면서 내가 남긴 흔적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깨달음이 오는 듯하다.

아이들과 자주 먹은 음식, 다시 먹고 싶은 메뉴, 누구와 함께 먹고 싶은지, 이런 이벤트도 한번 열어보면 어떨까. 

단순한 요리책이 아닌 <스토리가 있는 엄마의 레시피>! 

언제쯤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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