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충 하더니 이윽고 봄비가 쏟아진다.
아직 제대로 벚꽃을 못 본 것 같은데…
하루에도 오락가락하는 변덕스러운 날씨는 독일에서 매우 자주 겪었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는 본디 백이면 백 화창한 날씨를 좋아하는 외향적인 사람이니까.
우중충하니 괜히 다운되고 아쉬운 마음이지만 봄비가 내릴 때면 생각나는 곡이 있다.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이다.
쇼팽은 이 곡을 1838년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에서 작곡했다.
쇼팽은 쇼팽의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와 함께 스페인의 아름다운 휴양섬인 마요르카로 도피차 떠나게 된다.
마요르카 섬은 좋은 날씨와 멋진 해변, 따사로운 햇살로 지금도 유럽인들에게 아주 유명하고 친근한 손에 꼽히는 휴양지이다.
쇼팽도 그런 풍경과 휴식을 기대하고 갔으나 막상 도착하니 웬걸 생각보다 비가 너무 많이 왔던 거다.
계속되는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 어느 날
쇼팽의 폐결핵 약을 구하러 연인이던 조르주 상드가 폭풍우를 뚫고 나갔다 돌아왔다.
자신을 위해 비바람을 뚫고 나간 자신의 사랑하는 연인을 누군들 걱정하지 않았으랴
쇼팽도 무척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기다리며
어두컴컴한 피아노 앞에 홀로 앉아 이 곡을 작곡했다.
환영에 휩싸인 채 말이다.
곡의 처음, 왼손의 Ab 소리는 쇼팽이 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하나하나를 표현한 것이다.
차분히 내려앉은 듯 아름다운 오른손 멜로디와 톡 톡 떨어지는 왼손의 빗방울 소리가 합쳐진다.
그리고 중간 파트, 완전히 바뀐 분위기의 어두운 단조의 선율은 마치 거센 폭풍우를 연상시킨다. 분명 장송행진곡은 아니나 유례없는 길고 긴 크레셴도는 마치 목숨마저 위태해지는 폭풍우 속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가는 듯 드라마틱의 극치를 보여준다.
유려하고 매끄럽게 흘러가는 빠른 패시지의 여느 쇼팽의 곡들과는 달리
빗방울 전주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빗방울 소리가 하나하나 마음에 맺히듯 울려 퍼진다.
리스트 단테 소나타처럼 지옥과 천당을 넘나들며 투쟁과 의지를 드러내는 불벼락 같은 곡을 연습하다가 ,
혹은
이거 아름다운 멜로디 입힌 하농의 고급버전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손가락 운동의 집약체(?)인 슈만 토카타를 연습하다가 흥분한 손과 마음을
가라앉히려 잠깐 연주하기에도, 듣기에도 딱인 곡이다.
F. Chopin - Prelude Op.28 No.15 <Raindr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