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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Apr 11. 2022

자기소개서의 시작은 ‘시간여행’(2)

자기소개서의 정석-11

 <경험 리스트>를 완성하고 내가 겪었던 경험을 이야기 형태로 정리하는 ‘경험의 구조화’까지 끝냈다면 다음은 본격적인 자기소개서 작성에 돌입하는 단계다. 덥석 ‘최종 제출’ 버튼을 누르기 전에 팩트(Facts)와 스토리(Story)라는 관점에서 여러분의 자기소개서를 찬찬히 들여다보자.


 과연 나의 자기소개서는 그저 단순한 사실을 나열하고 있는가? 아니면 읽는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을만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가?

세상은 이미 물질적인 부가 아닌 문화와 가치, 생각이 중요해지는 꿈의 사회로 진입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자신만의 고유한 스토리를 팔아야 한다. 스토리텔링을 배우지 못한다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고,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는 의미와도 같다”-미래학자 롤프 옌센(Rolf Jensen)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경험을 이야기(Story) 형태로 정리할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그 경험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Facts)의 단순한 나열에 그치지 말고 그 경험이 나(지원자)의 성장과 현재의 입사 지원에 어떤 의미(가치)가 있는지를 맥락이 닿게끔 설명하는 것이 자기소개서 스토리 텔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스토리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상호작용(Interaction)이다. 상대가 관심을 기울일 만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내용이어야 비로소 스토리가 완성된다는 뜻이다. 그래야 상대가 귀를 곧추 세우고 이야기에 몰입한다.

 자기소개서에서도 “나(지원자)는 어떤 사람인지" "왜 이 회사와 (채용하는) 직무를 원하는지" "회사는 왜 나를 뽑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보다 기업에게 더 흥미롭고 의미 있는 내용은 없다. 기업이 우리회사와 채용하는 직무에 적합한 '준비된 인재'인가를 판단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아래의 자기소개서는 스토리 텔링의 좋은 사례다. 관찰자의 시각에서 노부부 사장님의 배려와 따뜻함이 넘치는 공간인 편의점을 마치 현장에서 직접 보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올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내서 그야말로 CCTV급 리얼함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노부부 사장님의 모습에서 어떤 배움과 깨달음을 얻었는지를 중간중간 덧붙여서 왜 이 경험이 자신과 지원하는 기업에게 의미가 있는 지를 호소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준비된 은행원, ‘따뜻한 말 한마디’의 교훈

Q: 은행원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은 무엇이며, 해당 역량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이나 경험이 있다면 기술하십시오. 

“은행원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은 ‘고객응대’라고 생각합니다. 고객응대의 기본은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공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고객 서비스를 실천하는 방법은 ‘일상의 따뜻한 말 한마디’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근처 작은 편의점을 운영하시는 노부부 사장님께서 일깨워주신 교훈입니다. 


 제가 다니는 대학교 후문 근처에 3 개의 편의점이 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작고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의점만을 이용했습니다. 노부부 사장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자석처럼 저를 그곳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는 “공부하기 힘들지! 그래도 밥은 꼭 챙겨 먹고 다녀야 돼”, 또 찬바람 불어오는 겨울이 되면 “감기 걸리지 않게 따뜻하게 입고 다녀” 편의점을 찾을 때마다 건네주시는 말 한마디가 이상하게 크나큰 위로로 다가오고 힘이 되었습니다.


 크고 가까운 편의점들을 제쳐두고 굳이 멀리 떨어진 작은 편의점을 찾게 된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저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그곳의 단골손님이었고, 학교 잡지에까지 두 분의 인터뷰 기사가 실릴 정도였습니다. 노부부 사장님을 통해 사람의 마음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사소한 말 한마디로도 움직일 수 있고, 사소한 말 한마디야말로 사람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손쉽고도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노부부 사장님께서 일깨워주신 ‘따뜻한 말 한마디’의 가르침은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마음가짐까지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 내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대기업 계열이라서 고객 응대에 대한 체계적인 매뉴얼을 갖춘 곳이었고 저도 철저히 매뉴얼에 따라 고객을 응대했습니다. 그런데 노부부 사장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듣고 나서부터는 매뉴얼에서 제시하는 멘트 다음에 저만의 마음이 담긴 말 한마디를 덧붙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어, 생일 케이크가 있는 테이블에는 생일 축하 멘트, 어르신 고객이 계신 테이블에는 건강관리를 위해 음식을 조리할 때 혹시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을지를 여쭤보았습니다. 사소하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 울림 있게 전달된다는 것을 알기에 고객을 대할 때 조금 더 신경 쓰기 위해 노력한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전달되어서인지 고객의 감사카드를 가장 많이 받은 매장 우수사원으로 여러 차례 선정되었습니다. 은행원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고객들을 대하는 일을 합니다. 단순한 업무적인 상담에 그치지 않고 마음이 따스해지는 말 한마디를 고객들에게 전하고자 노력하는 가슴 따뜻한 은행원이 되겠습니다.


 특히 지원자는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 경험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왜 지원한 은행원에 적합한 인재인지를 설득력 있게 연결하고 있다. 실제 필자는 노부부 사장님께 얻은 배움과 깨달음을 패밀리 레스토랑 아르바이트에 접목했다는 대목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그런 마인드와 실행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미소와 친절이 생명인 은행원이 되기에 충분한 인재라고 판단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내용과 전개를 지원한 은행(원)과 관련된 한 편의 이야기가 되도록 구성한 스토리 텔링이 돋보이는 자기소개서다.


  또한 경험의 구조화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각각의 경험과 관련된 역량(sSill)의 키워드를 ‘매칭(Matching)’해보는 것이다. 자기소개서 질문 항목들을 살펴보면 도전·창의성·협업·의사소통능력·추진력 등 업종과 기업을 불문하고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기본 역량들이 있다.

 소위 ‘비욘드 테이스트(Beyond Taste)’다. 모든 취향을 넘어선 취향을 말한다. 거의 예외 없이 대부분의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경험을 이러한 역량 관련 키워드와 미리 연결 지어 정리해 놓으면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훨씬 수월해진다. 크고 작은 경험들이 일관된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나의 키워드로 묶어주는 것이 포인트다. 



 그런데 하나의 경험을 한 가지 역량과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역량과 연결시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다음의 사례는 ‘봉사활동 경험’을 정리한 내용이지만 으레 ‘봉사’ 하면 앞머리에 떠올리게 되는 소통이나 공감 역량 외에도 필요에 따라서 창의성이나 문제 해결 능력 등의 다채로운 역량과 연결 지을 수 있다. 실제 봉사활동의 주인공은 자기소개서에서 “새로운 것을 접목하거나 남다른 아이디어를 통해 문제를 개선한 경험”의 구체적인 사례로 활용했다.


“교내에서 우연히 저소득층 청소년 여학생들이 생리대 살 돈이 없어서 고통받고 있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마주했습니다. 봉사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던 저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교내 광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생리대 기부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공감대 형성이 쉬운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목표량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전체 학생 중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남학생들의 참여가 절실했습니다. 그래서 관점을 확 바꿔서 “남자들이 모르는 고통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 기부가 아닐까요?”라는 색다른 메시지를 앞세워 고정관념을 깨고자 노력했습니다. 결과는 모금액수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만큼 남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고, 성공적으로 목표금액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팀 과제에 얽힌 지원자의 경험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발표능력·창의성·분석력·도전정신 등의 여러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나는 이러이러한 역량이 있어요”라고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지 않으면서도 팀 과제를 진행한 경험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역량을 가진 인재임을 자연스럽게 어필하고 있다.


 인문학 교양강좌에서 팀 과제를 진행했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던 경험이 있습니다. 제게 주어졌던 팀 과제는 하나의 문학작품을 골라 전체적인 분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문학이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착안해서 주제를 선정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팀들이 시나 소설을 분석대상으로 골랐지만 저희 팀은 영화를 분석해보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작품 선정에서부터 다른 팀과 차별화가 가능하고 신선한 시도로 어필할 수 있다는 저의 의견에 팀원들도 흔쾌히 동의해 주었습니다. 저희 팀은 영화 <광해>를 분석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에는 그만큼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나 소설은 수업에서 많은 예시가 나오고 참고할 자료도 풍부해서 분석이 수월했지만 영화는 상대적으로 참고할만한 자료가 부족했습니다.

 게다가 시나리오 분량은 70페이지 남짓이었지만 캐스팅과 촬영기법 등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구조와 복선 등의 디테일을 찾아내기 위해 러닝타임 2시간가량의 영화를 10번 이상 반복해서 시청했습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중간발표에서 교수님과 학우들의 호평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리고 최종 발표에서는 “조연들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해보면 더욱 좋을 것 같다”는 중간발표 때의 피드백을 반영한 결과 참신한 시도에 더해 완벽한 작품 분석이었다는 평가를 교수님께 들었습니다. 그 결과 저희 팀은 최고점을 받는 결실을 이루어 냈습니다.



 저는 이 경험을 통해 차별화된 성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열린 시선으로 새로운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아이디어는 철저한 준비와 노력을 통해서만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소중한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정리하면 음악에 ‘변주곡’(變奏曲·하나의 주제가 되는 선율을 바탕으로, 리듬·화성·멜로디 등을 여러 가지로 변형하여 만든 기악곡)이 있듯이 자기소개서를 쓸 때도 하나의 경험으로 무수한 변주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험 리스트>를 미리 준비해두면 완성도 높은 자기소개서를 훨씬 수월하게 작성할 수 있다.



 기업에 따라 질문 항목이 조금 바뀌고 글자 수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자기소개서에서 요구하는 경험들은 큰 틀에서 보면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험 리스트를 작성했다고 거기서 끝이 아니다. 고치고 또 고치기를 반복하면서 완성도를 높여 나가야 한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을 확인하면 된다지만 예전에는 사람들이 낯선 길을 갈 때는 지도책을 펼쳐놓고 혹시나 이정표를 놓칠세라 눈이 빠져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펴야 했다. 그래도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였다.


 그런데 내비게이션(Navigation)이 등장하고 나서부터는 길 찾기가 훨씬 편해졌다. 내비게이션은 경로를 분명하게 안내해줌으로써 빠르고 편안하게 목적지까지 이끌어준다. 내비게이션만 있으면 아무리 타고난 ‘길치’라도 먼 거리를 돌아가거나 같은 장소를 빙빙 도는 낭패를 피할 수 있다.



 낯선 길을 나설 때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듯 취업이라는 여정을 나설 때도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줄 경험 리스트가 필요하다. 경험 리스트를 활용해서 흩뿌려진 파편처럼 기억 속에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두면 지나온 경험들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나쳤던 과거의 경험들이 생생하게 떠오를 것이다. 경험 리스트가 잊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방아쇠 역할을 한 격이다.



 그래서 경험 리스트는 자기소개서 작성을 위한 튼튼한 기초공사라고 할 수 있다. 자기소개서를 본격적으로 쓰기 전에 내용의 개요를 미리 잡아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건축과 같다. 크든 작든 건물을 올릴 때는 반드시 설계도가 있어야 한다. 건물을 지을 때 꼼꼼한 설계도가 필요한 것처럼 경험 리스트는 탄탄한 구성을 갖춘 자기소개서로 이끌어주는 밑그림의 역할을 한다.


 경험 리스트를 준비하면 자기소개서의 기본골격은 완성되는 셈이다. 모름지기 기초공사를 튼튼히 해두어야 건물을 높이 올릴 수 있는 법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굳이 취업과 연결 짓지 않더라도 앞으로의 인생설계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취업을 준비하는가? 그에 앞서 인생설계가 필요한가? 그렇다면 경험 리스트라는 내비게이션을 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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