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신발 끈을 묶으며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그 순간이 평생 잊지 못할 풍경이 될 거라는 걸 알았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는 잔잔했고, 하늘은 점점 붉게 물들고 있었다.
태국 파타야의 끄라팅라이 비치.
외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비치이지만 태국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이 조용한 해변은, 그날따라 더욱 말갛고 아름다웠다.
“오늘은 드디어, 마지막 30분 연속 달리기야.”
남편에게 건넨 말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었다.
런데이 앱의 달리기 기초 8주 프로그램인 30분 연속 달리기의 마지막 미션.
달리기를 처음 시작한 후 부토 이 8주 프로그램대로 주 3회 꼬박꼬박 성실하게 달려와 마지막에 도달한 이 미션이, 이렇게 아름다운 비치에서 완성된다니...
이건 우연이 아니라 축복처럼 느껴졌다.
해변을 따라 발을 내디뎠다. 조금은 낯선 길, 하지만 익숙한 마음.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여전히 걱정이 앞섰지만 그 걱정을 삼키고 심호흡을 했다.
해변을 스치는 바람이 내 어깨를 밀어주듯 다정하게 지나갔다.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처음 5분, 모래사장 옆 아스팔트를 밟으며 조심스럽게 속도를 조절했다.
바다가 내 왼쪽에서 속삭이듯 출렁였다.
15분쯤 달릴 무렵 갑자기 햇살이 구름 사이로 찢어지듯 내리며 바다를 붉게 비추었다.
바다 저편 수평선 가까이서 태양이 서서히 내려앉으며 주변색을 바꾸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몸이 가벼워졌다.
호흡은 일정하게 유지되었고 두 다리는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30분.
런데이 앱의 보이스 코치가 프로그램 종료를 알리는 음성과 함께 앱이 꺼졌다.
“30분 연속 달리기, 완료!”
나는 멈춰 섰다. 그리고 숨을 몰아쉬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햇살은 이미 붉은 노을로 변해 바다를 감싸 안고 있었다.
나는 그 노을 앞에서 땀범벅이 된 채, 옆에서 내 발에 보조를 맞추면 함께 뛰어준 남편을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그 순간의 우리를 사진으로 찍었다면, 그건 분명 행복이라는 단어의 얼굴일 것이다.
“나 해냈어.”
우리는 말없이 하이파이브를 했다.
손바닥이 맞닿은 순간, 뭔가 더 단단해진 느낌이 들었다.
우리 사이는 물론, 나 자신과의 관계도.
한바탕 사우나를 한 듯 온 몸이 땀으로 젖은우리는 해변가의 작은 오픈형 카페에서 시원한 코코넛을 주문하고 마주 앉았다.
달리고 난 뒤의 갈증을 달래주는 그 한 모금.
달콤하고, 시원하고, 살아있다는 것이 실감나는 맛이었다.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이 말을 내뱉고 있는 이 순간의 내 모습이 너무 좋으면서도 낯설기도 했다.
선풍기가 날아가고 불행이 찾아온 그 어느날부터 "좋다, 행복하다"의 긍정적 단어보다 "힘들다, 우울하다, 불행하다"등의 부정적 감정이 나와 우리 가족을 감쌌던 시간들 틈새로 내가 지금 “좋다”라는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감사했고, 그래서 더 감동스러웠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알고 있었다.
이 감동이 끝이 아니라는 걸...
달리기에서 이 30분은 시작이었다.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더 긴 거리, 더 깊은 감정,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들이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걸...
그리고 내 삶에 있어서도 더 깊은 감정, 더 많은 이야기들이 담길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