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km 마라톤 도전
2023년 2월 11일, 토요일.
태국 파타야의 마프라찬 호수에서 열린 ‘제 1회 Nongprue City Run 2023’.
이국의 낯선 공기와 뜨거운 태양 열기 속에서, 내 인생 첫 마라톤 대회의 막이 올랐다.
이제 막 런데이 앱의 30분 연속 달리기를 마친 초보 러너였지만, 그날만큼은 누구보다 당당한 참가자이고 싶었다.
아직 러너라 부르기엔 많이 부족했지만, 달리기를 사랑하게 된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컸기에.
대회 하루 전날, 현장은 이미 축제 분위기로 가득했다.
전야제가 열리던 금요일 저녁, 몸을 가볍게 풀 겸 마프라찬 호수를 찾았다.
수 많은 천막들과 무대, 설치된 조명과 풍경 사이로 태국 전통 무용이 펼쳐졌고, 야시장에는 태국 길거리 음식부터 한국의 붕어빵을 닮은 간식까지 눈을 사로잡는 것들이 가득했다.
경찰과 공무원들이 현장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고, 질서와 흥겨움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공간 속에서 나는 이 도전이 단지 달리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축제를 즐기듯이, 인생의 작은 승리를 준비하는 느낌이랄까.
그날 밤도 가볍게 운동을 마치고 생 코코넛 한통으로 시원하게 갈증을 달래고 사진 몇 장을 남긴 뒤 조용히 다짐했다.
내일 꼭, 완주하자고.
그리고 마침내 대회 당일.
오전 11시쯤 대회 키트를 수령하러 현장을 다시 찾았다.
알록달록 태국 느낌 물씬 풍기는 대회 티셔츠와 배번을 받으며 마치 유니폼을 입는 전사의 기분마저 느껴졌다.
출발선 앞에서 남편과 사진을 찍으며 서로를 응원했고,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내가 지금, 정말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거구나...
오후 5시에 시작되는 레이스를 앞두고 마음이 조금씩 요동쳤다.
평소 해가 진 후 저녁에만 달리던 나에게 해가 지기 전 늦은 오후의 뜨거운 태양볕이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출발선에 모여든 수많은 참가자들을 보며 용기를 얻었다.
각자의 사연과 준비가 담긴 표정들, 서로를 격려하는 손짓, 아이 손을 잡고 나온 가족, 친구들과 함께 나선 팀 러너들. 그 모두가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출발 신호가 울렸고 우리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런데이 앱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화이팅!”을 외친 뒤, 자연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초반 2km는 마프라찬 호수가 아주 드넓게 바라다보이는 둑방길이었다.
그 길 위로 작열하는 햇볕이 그대로 내리꽂혔다.
이어지는 2km는 오르막길의 연속이었다.
쉼 없이 이어지는 경사에 점점 호흡이 가빠지고 다리는 점점 무거워졌다.
아직 반환점도 오지 않았는데 이래도 되는 걸까라는 걱정이 밀려들 무렵, 문득 호수 위로 드리운 노을이 눈에 들어왔다.
오렌지빛 태양이 물 위에 번져있는 그 풍경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지금, 내가 이 길 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6km를 지나며 마음을 다시 다잡았다.
하지만 고비는 또 찾아왔다.
8km 지점, 몸속 수분이 바닥난 듯 숨이 막히고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급수대를 지나며 물 한 모금을 들이켰고 잠시 걸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단 한 번도 걷지 않고 완주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그 순간은 유난히 속상했다.
하지만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오늘 이곳에 선 것만으로도 내 자신을 충분히 칭찬할 자격이 있다고 믿고 싶었다.
9km 푯말이 보였을 때 다시금 에너지가 솟구쳤다.
‘지금이야!’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스퍼트를 올렸다.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끝내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 순간, 목에 걸린 완주 메달은 세상 무엇보다 값졌다.
누가 시켜서도, 누굴 위해서도 아닌,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 이룬 작은 승리.
생애 첫 마라톤 대회의 결승선은 그렇게 내게 도착했다.
결승선 근처에서 나눠준 식사 쿠폰으로 국밥과 쌀국수, 시원한 수박까지 챙겨 잔디밭에 앉아 남편과 함께 먹으며 대회를 되새겼다.
처음엔 막연히 '될까?'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걷더라도 끝까지 가보자는 의지가 결국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든든했던 건 남편과 이 첫 도전을 함께 달리고 함께 이뤄냈다는 사실이었다.
나에게 있어 생애 첫 마라톤대회였던 이 마프라찬 대회의 경험은 그저 레이스를 한다는 의미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불행과 우울이라는 단어로 물들어가던 부정적이고 자신감을 잃어가던 나 자신과의 화해였고, 또 다시 긍정적 에너지와 행복한 삶을 찾아내기 위해 극복해야 하는 두려움을 이겨낸 작지만 진한 용기의 기록이었다.
또한 생기를 잃어가던 남편과 나를 살려준 회복제였고 우리를 더욱 강하게 묶어준 단단한 연결고리였다.
앞으로도 계속 달리기를 하고 또 다른 대회를 준비하게 될테지만 이 생애 첫 마라톤대회는 언제나 내 마음속 가장 빛나는 여정으로 남아 반짝거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