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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마라톤에 도전장을 내다

친구 부부와 함께 부부동반 하프마라톤 대회 완주

by 디베짱

나를 달리기의 길로 이끌어준 친구가 있다.

우리는 태국에서 처음 만났다.

처음부터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같은 나라에서 비슷한 시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낯선 땅에 정착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함께 보낸 시간보다 나눈 마음이 더 컸던 사이였다.

아이들의 학업 문제, 남편과의 관계, 가끔은 감당하기 어려운 외로움까지...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듯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봐주던,,,

그런 친구였다.


특히 내 딸이 방황의 시기를 지나고 있을 때 그 시간을 옆에서 묵묵히 지켜준 것도 바로 그녀였다.

어떤 위로의 말보다 말없이 같이 걸어준 그 마음이 내겐 가장 깊은 위로였다.

그녀와 나는 그렇게 인생의 가장 예민하고 복잡한 시간을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 함께 지나온 셈이다.


그런 우리 사이에 어느 날 ‘달리기’가 들어왔다.

아주 자연스럽게 하지만 돌아보면 인생의 또 하나의 전환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먼저 런데이 앱을 시작했고 내게 조심스럽게 권했다.

“런데이 앱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거 한 번 해봐. 이 앱 하나면 야 너두 달릴 수 있어!!!”


그때는 그냥 좋은 친구가 하는 말이고, 좋은 것이니까 나누고 싶은 마음에 소개한 것이라 단순하게 여겼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 속엔 나를 향한 염려와 위로와 사랑과 진심이 가득했다는 것을 안다.


그 친구 역시 그 당시 삶의 고비를 지나고 있었다.

여러 가지 마음의 무게를 안고 있었고 혼자 달리며 스스로와 대화하는 시간을 통해 자기의 삶을 바꾸고 성장해 나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와 그녀의 달리기는 어느새 우리의 대화를 바꿔놓았다.

“요즘 잘 뛰고 있어?”


“어제는 8km 뛰었는데, 너무 힘들었어”


“정말 신기하지? 5km 뛰는 날엔 4km부터 10km 뛰는 날엔 8km부터 힘드니~~~ 달리기도 마음이 시키는 일인가봐.”


우리는 예전에는 자식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해 갔다면 이제는 서로의 땀과 숨과 발걸음을 공유하며 또 하나의 새로운 공감대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태국의 연휴를 맞아 베트남 친구네 집(태국에서 함께 지내던 그 무렵 그녀는 거처를 베트남으로 옮긴 직후였다.)으로 놀러 간 우리 부부와 친구 부부는 그날도 서로의 달리기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사실 그 무렵 친구와 나뿐만 아니라 남편들도 덕분에 달리기를 즐기고 있었다.


맛있는 식사와 즐거운 대화와 주고받는 맥주 한 두 잔이 우리의 기분을 더욱 부추겼을까?

어느새 누군가의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다음엔 우리 부부 동반 마라톤 한 번 나가볼까?”


그러면서 서로 너무 재미있겠다면서 웃으며 넘겼지만 그 말은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그 무렵 우리 넷은 모두 10km 이상의 거리는 충분히 뛰면서 각자 운동을 하고 있을 때였기에 다음 달리기 목표는 자연스레 하프마라톤대회 참가로 방향이 정해졌다.


그리고 그 운명의 부부동반 마라톤대회는, 태국에 사는 우리 부부와 베트남에 사는 친구 부부가 비교적 덜 더운 하롱베이라는 중간 지점에서 다시 만나 달리도록 해주었다.


바로 “베트남 하롱베이 하프마라톤 대회에 함께 나가기로 결정하고 신청 접수까지 마치게 된 것이다.



달리기를 통해 친구와 나는 더 강하고 깊게 연결되었다.

이전에도 서로를 아끼고 의지하는 사이였지만 이제는 함께 훈련 일정을 조율하고 기록을 비교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러닝 메이트가 되었다.

누군가는 달리기는 혼자 하는 운동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달리는 친구가 있다는 건 때때로 가장 큰 위로이자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대회를 앞두고는 훈련 강도를 어떻게 조절할지 무더운 날씨에 어떻게 체력을 유지할지서로 팁을 주고받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러닝 채널’을 활짝 열어두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달리는 이유에 대해 서로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누구는 건강을 위해 누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또 누구는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달린다고 했다.

우리에게 달리기는 어느새 삶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창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하롱베이에서 마라톤대회 하프코스를 완주한 날.

우리는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다음엔 풀코스??”


나는 머리가 찰랑찰랑 흔들리도록 크게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외쳤다.


“놉!!! 나는 오늘 이후로는 절대로 장거리는 안 뛸거야! 절대!!”


그녀는 지금도 그때 내 표정을 흉내 내며 놀리곤 한다.

그렇게 우리는 달리기를 하지 않던 시절엔 삶의 굴곡을 함께했었고 이제는 달리기를 통해 새로운 우정의 결을 함께 짜 나가고 있다.


친구와 나, 그리고 우리의 남편들까지... 이제 우리 넷은 함께 달리는 사람들이다.

서로 다른 곳에 살고 있지만 각자의 길 위에서 서로를 떠올리며 달리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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