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하지 못할 것 같은 일에 도전하기
3일 간 인수인계가 이어졌던 생애 첫 일터는 대략 이런 모습이었다. 30년은 족히 넘는 빨간 벽돌 건물, 계절과 상관없이 한기가 머무는 내부 기운, 노후가 심한 벽면, 학생회관 건물 1층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며, 총학생회 학생들이 중요한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의논하러 오는 약속 장소다.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습기로 인해 건물 곳곳에 숨어있던 오래된 먼지 냄새가 스멀스멀 기어오르기도 한다.
처음 사무실에 발을 딛었을 때 넓은 골방 같은 사무실에서 직원분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에 적잖게 당황했다. 매일 같이 오던 학교인데 이 낯선 느낌. 하지만 인수인계 차 몇 번 왔다 갔다 하니 환경적인 부분은 금방 적응이 되는 듯했다. 마치 오랫동안 잘 알고 지냈던 사람의 몰랐던 구석을 마주한 느낌이랄까. 건물 구석에 박혀있던 사무실의 정체를 이제 알게 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익숙하지만 새로운 공간에서 1년 6개월의 짧으면서도 길었던 첫 직장 생활의 막이 올랐다.
교내, 교외 장학 업무 담당하는 '학생서비스팀', 교내외 장학과 봉사 업무를 담담하고 입학식과 축제 등 학교 행사가 있을 때면 동원되기도 하는 부서다. 이곳에서 나는 한국장학재단에서 운영하는 '국가근로장학사업'과 '대학생청소년교육사업' 담당 업무를 맡았다. 정작 학교 다니면서 참여해 본 경험조차 없는 사업인데 담당자로서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근심, 걱정이 제일 먼저 앞섰다. 그리고 학교 다닐 때 이런 사업에 참여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미련도 살짝 밀려왔었다.
하지만 하는 수 있나? 그 후회와 미련을 학생들의 사업 참여를 독려하는 차원에서 에너지로 사용할 수밖에. 사업 업무 말고도 학생 봉사 활동 업무도 틈틈이 처리해야 했다. 무려 매 학기 천 명이 조금 넘는 학생들의 봉사활동 증명서를 확인하고, 봉사활동 수업의 학점을 등록해 주는 등 이 모든 일이 제3세계를 만난 것 같은 새로움과 혼란 그 자체였다.
행정 업무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문의 전화 대응이었다.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 이야기는 뒤에 가서 차차 얘기하려 한다. 학생서비스팀은 '서비스'팀이라는 이름답게 문의 전화가 폭주하는 대표적인 부서다. 문의가 없는 부서가 있겠냐만은, 이곳은 와도 너무 온다. 3일 간 나에게 업무를 알려주던 선생님은 약 1분, 혹은 몇 초 꼴로 울리는 내선 전화기의 수화기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나에게 뭔가 설명해주려고 할 때마다 수화기 너머에 들리는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대처하느라 더 정신이 없었다. 그렇다. 단지 조교일 잠깐 한 거 가지고 이렇게 장황스럽게 글을 쓰는 이유는 매일 불특정 다수로부터 걸려오는 '문의 전화'에 관한 향수가 강렬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스스로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믿었던 일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0순위에 해당하는 일이 '서비스직'이었다. 사람 상대하는 일이 무섭고, 전화도 잘 못 받고, 정말 아는 사람이 아니면 모임도 안 나가는 극 내향형인 성격 탓이 컸다. 그래서 이 일을 하기 전에는 모르는 전화번호가 핸드폰 화면에 뜨기만 하면 전화를 받을 엄두가 안 나서 그 자리에서 핸드폰 화면 위에 엄지손가락만 얹혀놓은 채, 수신 신호가 사라질 때까지 멍하게 서있었다. 택배 기사 아저씨 전화도 편하게 받지 못할 정도로 전화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러나 9월 23일 본격적으로 업무를 맡고 나서 곧바로 빗발치게 쇄도하는 전화를 계속 받아내느라 문의전화의 두려움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었다. 그냥 전화를 받느라 속절없이 흘러가는 하루에 몸을 내던지고 있었다. 한 학기에 대략 350명 되는 근로 학생을 배치하기 위해, 학교 내 부서와 학교 외 기관의 담당자 선생님들과 수 십통의 메일과 전화를 주고받고, 학생들이 전화할 때마다 근로 가능 여부 등 갖가지 문의에 응답해 주고, 그러다 보면 '입에서 단내가 난다'의 의미가 뭔지 몸소 체험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정말 오후 4시가 넘어가면 혀끝에서 진달래의 단향과 비슷한 단내가 올라온다. 거의 극기 훈련과도 비슷했던 전화 훈련을 거듭하면서 전화 포비아 증상은 서서히 사라져 갔다. 지금은 보이스 피싱 의심 전화도 몇 차례 받을 정도로 전화에 대한 거부감은 사라졌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나한테 너무 혹독했다. 글을 쓰고 나니 그 당시 인수인계가 끝나고 앞으로 겪을 일을 모른 채, 집에서 짜파게티를 먹으면서 스스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일부로 못 본 척했던 나를 다독여 주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그럼에도 해냈다고, 그 시간들을 다 견뎠다고."
"그리고 너는 지금과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