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는 눈

스물여섯 엄마의 스물두 번째 일기

by 김아현

전국에 폭설 주의보를 알리는 기상 예보에도 눈송이들은 올해도 역시 본가를 찾아오지 않았다. 살면서 몇 번이나 될까, 눈을 본 기억이. 어릴 적 눈썰매장에서의 기억과 설원을 감각적으로 묘사한 문학 작품을 읽은 경험이 그 몇 번 되지도 않는 횟수에 포함된다면 몰라도, 실상은 체감 상 열 번도 채 되지 않는 것 같다.

겉을 감춘 채 얼어붙은 세상이 있으면 바다처럼 결코 얼지 않은 세계가 있는 것처럼, 나의 유년의 동네를 눈은 당연하게 비켜갔던 것이었을까. 파인애플과 알로에가 특산물인 따뜻한 지역에서 폭설은 십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귀한 손님이면서,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떠올리게 하는 옅은 불길함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겨울이 오면 입원실 창 너머 함박눈을 바라보는『작별하지 않는다』의 인선처럼 어떻게 하늘에서 저런 게 내려오지 하며 떨어지는 눈송이들을 생경하게 바라보고 싶기도 하지만, 눈과 거리가 먼 경상도 지역에서 눈송이가 낙하하는 현상을 보는 것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이므로 그 생각은 늘 어쩔 수 없이 체념의 형태로 보기 좋게 접히고 말았다.

눈은 '거의'라는 표현이 민망할 정도로 매년 그렇게 만나기 힘든 것이었다. 하늘에 걸린 별을 따는 것과 내리는 눈송이가 손바닥에 앉는 것의 차이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인지 눈송이의 무한한 결속으로 온통 하얗게 변해버린 동네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면, 미지의 세상처럼 퍽 이상적이고 생경하기만 한 것은 단지 눈송이라는 존재 때문은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겨울만으로는 단지 낙하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하여 영원을 감히 생각할 엄두를 낼 수 없는 것.

다른 계절에서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기다림이 요구되는 것.

어두컴컴한 새벽에 몰래 왔다가 해가 조금만 뒤척여도 금세 사라져 버리는 것.

당연하지 않은 것.

꿈과 소멸.

그리고 찰나.

신기루는 눈이다.


[스물여섯 엄마의 스물두 번째 일기]


2001. 1. 13. (토)


‘경남지역 대설 주의보’


눈발만 흩날려도 동네 아이들이 눈 온다고 좋아서 다 뛰쳐나가는 지역인데 밤새 이렇게 많은 눈이 내렸다고?

믿기지 않는 눈앞의 풍경에 놀라움과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온 세상이 하얗게 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이 신기한 풍경을 빨리 봐야 될 거 같아서 곤히 잠자고 있는 남편과 우리 아현이를 서둘러 깨웠다. 남편 눈이 동그래지고, 우리 아현이는 태어나서 이런 눈을 처음 보는지라 어리둥절 신기해했다.

아침밥을 얼른 챙겨 먹고 꽁꽁 싸매고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가족끼리 눈싸움을 하다가 아현이가 “아빠, 엄마 뱃속에 똘똘이 다쳐. 던지지 마”

아빠의 장난에 동생이 걱정이 되어 폭풍 잔소리다. 행여 뱃속의 동생이 다칠까 봐 걱정되어 엄마한테는 자그마한 눈뭉치도 안 던진다. 행복이란 게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눈을 굴리고 굴려서 가족 눈사람을 크게 하나 만들어 놓고 왔다. 훗날 우리 아현이가 자라서 5살 적 기억이 안 나더라도 사진을 보면서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게 사진으로 많이 남겨놨다.


폭설로 인해 즐겁고 행복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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