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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인포레스트 Oct 24. 2024

만 열여덟의 단상

조금은 늦은 답장

  9에서 2로 넘어가는 길목, 어둑하게 드리운 고목나무의 눅눅한 그림자 아래에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저에게 1은, 한 차례 꺾여 두 동강 난 상태여서 없는 숫자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부러진 숫자에서 삐져나온 날카로운 조각들이 주변에서 뻗어온 빛에 반사되어 저를 비출 때면 저는 반사적으로 등을 돌렸습니다. 선불교에서는 회광반조(回光返照)라 하여 본래 내면의 빛으로 스스로 비추어 보라고 가르치지만, 미흡하고 모자란 자신을 빛으로 상처를 밝혀 적나라하게 마주하는 일은 매번 저에게 참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빛은 저에게 위로이기는커녕 한창 서툴게 다스리고 있던 후유증을 오히려 덧나게 했습니다.

  저는 빛보다 어둠 속에 누워있는 것이 그리도 편했습니다. 그 어떤 눈동자도 없는 어둠 속에서 눈물을 흘리면 그게 그렇게 다른 위로보다 저를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어디서부터 피어오른 상처인지 분간할 식견이 없었던 저는, 나지막하게 바람결이 간들거리는 나무 옆에 기대면 그 바람이 해묵은 상처도 가져가지 않을까 싶은 미성숙한 공상에 빠지곤 했습니다. 어두운 사람이면 더욱이나 피해 갈 수 없는 인생의 깊고도 근원적인 의구심 속으로 파고들던 시절이었습니다. 실패한 경쟁에 대해, 인간관계의 유효성과 지속성에 대해, 그리고 가장 절실했던 성장에 대한 고뇌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답에서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꿈에서 문득 생시를 오가는 당신을 만납니다. 한참이나 어린 저의 이름을 높여 불러주시곤 하셨던, 그 낮고도 인자했던 온화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일렁입니다. 

     

 “바뀌는 숫자에 조급해지는 마음이 이런 건가 봐요. 제가 어렸을 때, 이런저런 꿈이 많았었는데, 갑자기 아무것도 없어진 것 같아요. 나침반도, 목적도, 방향도 잃어버려 요새 좀 공허하네요.”

  “늦지 않았어요, 아직도 얼마나 예쁠 나이예요. 아직도 한창이고 앞으로도 할 일이 얼마나 많아요.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니까 인내심이나 끈기가 참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런저런 일 있어도 잘 헤쳐나갈 거예요, 분명 잘할 거예요, 지금처럼요”

  “네......? 아, 그런가요? 인내가 많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아니에요. 스스로는 잘 모를 수 있는데, 제가 봤을 때 은근 집요한 구석이 있더라고요.”

  “아하......”

  “진짜예요. 진득하게 놓지 않는 성질이 있어서 뭐든 잘할 거예요.”

  “아...... 하하, 네, 말씀 듣고 생각해 보니 제가 그런 구석도 있는 것 같네요.”

  “그렇죠? 공부 쪽으로 계속 가면 잘 맞을 것 같은데”


  무겁고 어두운 말을 내뱉는 건 타고나기 쉽고 밝으면서 단단한 말은 제정신이 아닌 이상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에, 당신의 목소리는 저의 괴로움을 조금은 고귀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변함없는 어조로 조급하게 답을 알려주려고 하지 않고 조용히 제 말을 들어주셨습니다. 저는 특별한 답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당신의 말에 그동안 얼마나 채울 것에 급급하며 미성년의 시기를 느슨하게 질질 끌고 여기까지 왔는지, 어떻게든 증명되지 않으면 스스로 칭찬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성장한 것에 옅은 허탈감만 흘렀던 기억만 생각납니다.

  당신을 만나 뵙지 못한 몇 해의 시간이 지나 고목 나무를 스치는 찬 바람에 서서 떠올렸습니다. 그 젊은 날에 폭삭 늙어 버린 기분을 느낀 건 자신을 향한 가혹함 때문이었단 걸.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저는 비교하지 않아도 될 대상과 끊임없이 견주어 보는 못난 습관에 자신을 부족한 사람이라 꾹꾹 낙인을 찍던 괴로움의 대가로 어쩌면 당신을 만나게 된 걸까요? 제아무리 잘된 이도 인복(人福)이 없어서 망하기도 한다는데, 적어도 저는 당신을 만나 그럴 일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가볍지만 단단한 말, 등 위로 살포시 올리던 당신의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오후의 손길, 잔병치레를 밥 먹듯이 하는 성치 않은 몸으로 저의 끼니를 제일 먼저 챙겨주던 걱정들은 글을 적는 이 와중에도 한 뼘 더 깊고도 견고하게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아직 여물지 않은 열매가 예쁘게 익어갈 모습을 상상하고 바라는 마음에 건네주었던 따뜻한 말들. 오늘도 잠시 의지처 삼아 그 온화한 마음에 쉴 자리를 펴고 다리를 뻗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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