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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육안(肉眼)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손에 쥐려 하는 어리석음

by 김아현

쌓고 쓰러지고 찢어지고 울부짖다 사라지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풍파

증발하고 소멸하는 것들을 가여워하는 마음이 심신을 적실 적에도

병들어가는 육안 뒤에는 매달리고 지나가는 것들이 여지없이 쌓였다

병이 깊어져 갈 때쯤 뒤늦게 허약해진 육안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망망한 심연 위로 자상(自相)의 어두운 그림자를 더듬었다


손끝에 알알이 박힌 투명하고도 여린 유리꽃의 시린 파편으로 한 뼘

손가락을 덮은 잔주름 하나에 원망이 서린 선혈의 열기로 두 뼘

손바닥 위를 서성이다 엉켜버린 사선과 곡선과 직선의 집합체로 세 뼘

천변(千變)으로 번지는 나와 만변(萬變)에 부풀어 오르던 당신의 지난날로 네 뼘

겹겹이 쌓인 교집합을 드리운 어두컴컴한 어스름으로 다섯 뼘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세간(世間)의 손과 자상이 부딪힌다


나는 형상만 낭자하게 피어나던 어둑한 심연 속에서

멍청하게 병든 육안(肉眼)만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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