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를 생각하면
크레바스의 밑바닥,
그 영원의 줄기
암흑의 암벽을 지탱하는
무언(無言)에 잠기고 싶어
봄과 봄 사이,
여름과 가을 사이,
겨울과 겨울 사이—
어느 비를 생각하면
뒷머리부터 명치까지
소슬한 소름이 내려앉아
긴긴 적막에 흐드러진
어느 진동을 맞이하지
크레바스의 균열을 닮은
계절과 계절 사이는,
그 경계와 경계는
희망만 껴안다 사라진 것들
그래서 틈틈이 울어
지겨워서가 아니라
찌뿌둥한 몸을
뒤척이는 것도 아니라
겨울은 지날 수 없는
겨울이로구나
그걸 알아서
가랑비 같은
긴긴 여러 앓이
폭우의 말들
그걸 배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