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의 마지막 선물

읽지 않고 쓰지 않고 흘려보내 지난날에 대한 회고

by 김아현

책을 손에 쥐기 시작하고 몇 달이 흐른 어느 날. 글 없이도 어찌어찌 흘러간 여러 밤들을 헤아린 적이 있습니다. 아팠던 뒤에 수 없이 응시했고. 응시하면 언젠가는 사라지리라 믿었던 밤들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당시의 밤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전보다 흐릿해졌기는 하나 커다란 지진 이후 여진이 수 차례 오는 것처럼. 기억과 상황이 다시금 충돌했을 때 여지없이 방황을 피하지 못하는 제 자신을 그 뒤로도 여러 번 만났기 때문입니다. 어디든 의지하고 싶은 마음에 사람들과 어울렸으나 중심이 잡히는 듯 한 느낌은 찰나보다 길지 않았고. 무수히 많은 타인의 입들은 수증기처럼 가벼워 믿을만한 것이 못되었습니다. 흔들렸으나 결국 외로운 제 자신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는 어둑한 밤은 여지없이 찾아왔었습니다.

한창 아플 때 저는 책을 손에서 놓았습니다. 주로 종교와 철학 분야로 치중된, 상당히 편협했던 독서를 근근이 유지하고 있던 와중에 책을 완전히 덮어버리자, 영양분을 다양하게 공급받지 못한 세계는 곧 메말라 갔습니다. 다른 장르. 또 다른 세계로 손을 뻗는 시도 또한 멈추면서 독방에 갇힌 작은 생각은 케케묵은 불투명한 액체처럼 썩어갔습니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쩍쩍 갈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점점 밖보다 안이 더 편안하다는 착각이 커지면서 몇 평 남짓한 원룸에 고이는 하루는 자연스레 늘어갔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아플수록 더 다양한 경험을 해야 사람이 사는데. 책은 덮었지. 사람과의 교류도 줄어들지. 일도 안 하지. 아프다는 이유로 주변의 이야기를 냉담하게 가지치기하지. 아픈 제 자신으로부터 해방될 길을 찾기가 꽤 어려웠던 당시로서는 당연한 과보였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아픔의 골머리에 깊숙이 침전하던 시절에는 문자와의 거리 두기가 긴 시간 이어지던 무렵과 그 맥을 함께 했습니다. 막상 힘들 때는 그 사실을 알 길이 없이 흔들리면서 여러 밤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그 밤들이 뒤늦게 떠오르던 어느 밤. 어떻게 그 힘든 와중에 쓰지 않고. 읽지 않고. 사유하지 않고 미련하게 버틸 수 있었는지 제 자신의 미련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놀라움과 아쉬움이 어지러이 뒤엉킨 마음이 물큰하게 젖어가는 것을 마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란 사람은 책을 덮을 때 더 아픈 사람이었음을. 읽으면서 숨을 쉬고, 쓰는 것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던 것이었을까요.

책을 덮고 있었을 무렵의 나 자신이 이불에 무겁고 진한 눈물 자국을 숱하게 묻히며 진동할 수 있는 존재였음을 온몸으로 여실히 느끼고 있던 밤이 떠오릅니다. 책을 읽는 진짜 원동력은 근본적으로 삶의 슬픔과 고통과 고뇌를 바탕으로 생성됨을. 꽤 긴 시간 사라지지 않고 끈덕지게 눌어붙어있던 어떤 것으로부터 쓰임을. 읽지 않고, 쓰지 않고, 사유하지 않았던 하루들은 냄비 안에서 사납게 들끓던 투명한 물과 같았음을. 힘든 시간은 어디든, 언제든 산재함을. 나이 들어 아픔에 무뎌진 듯 보이는 인간도 사실상 더 큰 충격을 마주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임을 우선적으로 체득한다면 책과의 진솔한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태도를 갖춘 사람임은 분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그래야 책을 쥐더라도 중간에 아프다고 손 놓지 않고 책과의 진솔한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요.

책을 쥔 다음에야 머릿속에 조금씩 정리되었습니다. 책은 내가 흘린 눈물과 닮은 여러 슬픔과 암흑 속의 질문을 원재료로 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흔적을 남긴 그 모든 사유들은 지금과 같은 고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어려움 속에서 대부분 이루어졌고, 앞으로도 그 사실은 하나의 진리로서 유효하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살면서 글이 삶의 일부로 스며들 명분을 가지지 못한 삶을 걸었다면, 힘듦만을 옴팡지게 껴안고 누워있던 긴긴밤의 부재로 인한 결과물일 것입니다.

저는 고백합니다. 이는 힘듦이 없어서 마냥 좋은 삶이라 칭할 수 없음을. 내가 나로 인해 심히 괴로워본 적 없는 사람과 인생. 그런 길이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깨트려야 할 것과 나아가야 할 욕구의 부재로 인해 어느 방향이든 퇴보될 가능성을 내재한 길임을. 그런 운명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저는 신을 믿지 않고, 유일한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논리에 영원히 속박되지 않을 사람이지만, 신이 어둠에 빠진 인간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글쓰기와 독서는 더 이상 회피가 통하지 않음을 절실하게 통감하고 빛을 찾으려는 존재에게 선물하는 마지막 위로 같은 선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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