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사진을 찍으러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닌다. 골목과 골목 사이, 아파트와 주택 사이, 도로와 인도 사이를 누비다 보면 많은 장면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오늘은 한 초등학교 옆 문방구에 멈춰 섰다. 노란 배경에 쓰여 있는 ‘문방구’란 글씨가 어림잡아 10여 년은 된 곳 같았다. 멀찍이 문방구를 바라보는데 한 남자아이가 앞을 서성였다. 가게 문이 닫혔는지 들어가지 못한 채로 꼼꼼히 안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귀여워 문방구와 아이를 사진으로 남겼다. 1-2컷을 찍고 나자 문방구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아이는 갑자기 방향을 틀고 내게 다가와 물었다.
누구세요?
대뜸 내가 누구인지 묻는 아이에게 나는 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 웃음 지으며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급하게 떠다니던 무의미한 단어들 중 하나를 내뱉었다. 아이가 내게 다가와 질문을 할 것이란 예감은 했지만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물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내가 예상한 질문은
‘사진 찍으신 거예요?’, ‘저 찍으셨나요?’ 등등
자신을 찍은 것에 대한 불쾌함이라던가 궁금한 것들을 물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질문은 자신이 중심이면서 오로지 순수한 호기심이 가득한 것이었다. 질문을 하는 아이의 눈은 나를 마주치진 않았지만 말투의 첫소리부터 끝소리까지 마치 청정수가 흐르는 강물 같은 소리로 들렸다. 되려 내 마음이 오히려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 아이를 찍으려 했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것이었다. 아이는 다시 내게 다가와 물었다.
그래서 누구세요?
방금 전 대답이 이해되지 않은 게 분명했다. 나를 숨기려 한 대답이었으니까.
나는 사진가야, 사진을 찍고 있지
되도록 이해가 될 수 있도록 말하고 싶었다. 그러자 아이는 이제야 이해가 됐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안심하고 자리를 옮긴다. 정확하게는 아이와 거리를 두고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 5m쯤 아이와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됐을 때 뒤를 돌아보니 아이는 문방구에 아직도 미련이 남았는지 이리저리 움직이며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아이가 원한 것은 존재의 명확성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언어로서 표현이 가능한 명확성 말이다. 한 마디만으로 때로는 한 단어만으로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로 스스로 존재함에 있어 자신에게 설명되어야 한다.
이는 어느 학문, 어느 분야라는 총체적인 방향성을 뼈대로 어떤 삶을 살겠노라라는 설명 같은 것 말이다. 오늘도 곰곰이 생각한다. 나는 누구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