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면 7-8월에 125cc 클래식 바이크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나도 바이크는 위험한 교통수단이자 수명 단축을 조장하는 것으로 아주 싫어했다. 그런 내가 바이크를 사기로 마음먹은 이유 중 하나는 ‘죽음’ 때문이다. 누구나 직-간접적으로 목도하게 되는 타인의 죽음은 내게 두려움 보다 후회가 남지 않는 삶을 고민하게 했다
첫 죽음을 간접적으로 목도한 일은 초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친구가 횡단보도를 건너다 덤프트럭에 치여 죽었을 때다. 다음 날, 반에는 서툰 애도와 어색한 정적이 감돌았고 어렴풋이 ‘죽음’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각인됐다. 그리고는 성장 시기마다 몇 번의 죽음을 조금 더 목도했다
점차 각인된 죽음은 삶의 톱니바퀴와 맞물려 움직이기 시작하며 성숙해질수록 삶과 죽음은 때어 놓을 수 없는 것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다만 죽음이 우연 또는 운명이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흐르는 시간이 불가항적인 것처럼 우연과 운명, 어느 하나 인간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말이다
병에 걸려 천천히 죽거나 갑작스럽게 심정지로 죽거나, 교통사고로 죽거나 등 우리가 통제하지 못해 일어나는, 그게 죽음이란 우연과 운명으로 말이다. 그래서 생각하게 됐다. 한 번뿐인 인생에 두려움과 불안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에 포기한 일의 대부분은 단순한 이유라는 것
그래서 위험하지만 낯선 경험을 해줄 것 같은 클래식 바이크를 사려는 것이다. 내게 낯선 경험은 중요하다. 마치 기계 작동을 부드럽게 해주는 윤활제 같다고 해야 할까. 그런 점에서 오토바이는 타는 것 자체로부터 오는 낯섦과 교통수단의 제한으로 쉽게 가지 못했던 곳을 찾아가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나는 더 많은 낯섦으로부터 성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