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과 청소년기 그리고 어른의 역할
본 글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1.
햇살을 보면, 이게 우주에서 오는거구나,
우주의 기운을 받아서 에너지가 생긴다.
아이(그리고 우리)의 가능성은 다양하다. 과학적 접근의 식견을 갖고 있는 준호의 재능처럼, 폭군 코치 광수의 어린 시절도 그러했다. 30차례가 넘는 도박을 기억하고 복기하던 그의 기억력에서 재능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다양한 가능성 중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찾아내고 그 길을 걸어간다. 그것은 가장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고, 가장 잘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주어지는 환경에 의해서 선택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가능성 중에서 나의 길을 찾아내는 역할은 오로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권리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리고 모든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무수히 많은 간접 경험들을 통해 그 길을 추려낸다. 이때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는 부모다.
아저씨, 아빠 있어요?
아빠 좋아해요?
준호는 자신을 알아주는 아빠를 믿는다. 맞으면서 배우는 것이 틀리다고 말해주는 아빠를 신뢰한다. 그래서 자신의 전부였던 수영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것은 4등 수영선수로서 준호가 아닌, 존재 자체로서의 준호를 봐주는 아빠를 알기 때문이다.
2.
수영은 단 한 번도 준호를 떠난 적이 없었다. 맞으며 코치에게 레슨을 받을 때에도 물속에 있던 빛을 보았고, 수영을 포기했을 때에도 빛을 만난다. 두 번의 빛을 만난 준호는 수영을 좋아하는 순수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리고 전과는 달라진 생각을 갖는다. "1등을 하고 싶어". 준호와 그의 성공이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성적지향주의인 엄마의 '1등'이 아닌, 자신의 빛을 계속 따라갈 수 있기 위함의 '1등'.
아무리 나이가 어린아이여도 자신의 길을 결정하는 것은 끝내 본인이어야 한다. 이때 어른의 역할은 있는 그대로의 아이(존재)를 보아주고, 다양한 시도의 기회를 동기부여하며, 마지막으로 조건 없는 응원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때때로 엄마에게 혼자 자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일찍 떠나신 아빠와 가정을 지키기 위한 일하는 엄마 아래인 외동아들로 다른 여타 아이들처럼 공부를 잘해야만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주입받으며 학교를 다녔기 때문이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잘해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남들이 다 그러니까 나도 그러해야만 했다. 기대에 못 미치는 공부를 하는 나는 항상 일말의 죄책감을 지녔고, 그곳에서 피어난 것은 패배감과 시기였다. 다행히 좋은 친구를 만났고, 인생은 경쟁이 아닌 행복에 있을 거라 생각하며 나의 존재를 음악에서 찾았다. 올해 상반기는 아무 생각 안 하고 펑펑 놀며 나눔인문대학만을 하고 있지만, 이런 시기도 이것 나름대로 죄책감이 아닌 행복으로서 온전히 즐겨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마 하루하루 바빴던 작년을 경험해보고 나니 가질 수 있는 여유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 모두의 존재함에 박수를, 그리고 이 어려운 부모를 해주시는 나의 엄마와 아빠에게 무한한 감사를. 나는 아직 자라고 있고 이제는 나도 나이를 먹어서 때로는 누군가에게 어른의 역할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오늘의 이 시간은 우리 모두의 새로운 가능성과 진정한 어른의 역할을 확인한 것 같아 기쁘다.
#소유와 존재
세상은 1등만 기억하고 1등만 승자라고 이야기 합니다. 저는 <4등>이 '4번째 승리'를 쟁취한 승자이며 기억될만하고 축하받을만하다 생각합니다. 솔직히 <4등>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 정지우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