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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유진 Jul 03. 2024

집에서 나갈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깊은 동굴

은재는 겨우 잠에서 깨어서 시계를 봤다.

10시

또 10시다.


은재는 오늘도

7시에 고양이들의 밥을 주려고 일어났다가

정신이 또렷하면서도 도로 잠에 든 것이다.

은재는 멍한 정신으로 곰곰이

자신이 왜 이토록 잠에 집착적인지 생각했다.


·

·

·


괴로워서다.

하루가 끝날 때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은 것이

은재는 괴로워서

또 다시 자신의 곁을 떠나려는 잠을 붙잡고 자는 거였다.




은재는 침대에서 허리를 세우고 일어났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은재는 정말로

온 몸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의 고양이처럼.

그래서 은재는 책상을 보면서

불과 몇 주 전의 자신을 회고했다.


괜찮은 날의 은재는

대부분 집에서 종일 시간을 보낸다.

괜찮은 날의 은재에게 하루를 할 일들로 꽉 채워 보내는 일은 무척 중요했다.

다들 은재가 집에만 있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은재는 3년간 우울증을 앓으면서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과 충고를 겸허히 받아드려

나름의 규칙들을 세워 생활했다.


첫 째로 일어나서 1시간 이상 운동을 한다.

운동에 대해서는 다른 에피소드로 다룰 것이니 설명을 생략.


둘 째로 씻는다.

샤워를 하거나 비누로 세수를 한다.

귀찮아서 씻지 않는 일은 없도록 한다.


셋 째로 점심을 먹는다.

끼니를 챙기는 일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넷 째로 몇 개의 할 일들 중 하나를 정해 오후를 보낸다.

공부일 때도 있고

소설을 쓸 때도 있고

소설 릴스를 만들 때도 있고(인스타그램 @dbsdbwls_에서 그 예를 확인할 수 있다)

모 사이트에 기고할 글을 준비할 때도 있다.


다섯 째로 저녁을 먹는다.

주로 엄마의 밥상에 숟가락만 얹어 먹는다.


여섯 째로 또 다른 할 일을 9시까지 한다.


일곱 째로 고양이들의 나이트 케어를 한다.

양치를 시키거나

밥그릇 설거지

똥간 치우기 등등.


여덟 째로 세수를 하고

저녁과 취침 전 약을 몰아서 먹는다.

(은재는 매일 저녁 약을 잊는다)


그리고 취침.


은재는 괜찮았던 자신을 회고하면서

어쨌든 밖을 나가진 않는구나, 생각했다.


은재가 밖을 나갈 때는 딱 두 가지 조건 중 하나가 충족되어야 한다.

1. 담배 소진

2. 애인과의 데이트

이게 전부다.

그렇지 않으면 은재는 자의적으로 외출을 하지 않는다.

애인은 은재에게 푸름이 찾아올 때

밖을 좀 나가라고 호통 치듯 말할 때도 있지만,

그리고

사실 규칙적인 패턴을 만들라는 조언과 더불어

단 10분이라고 밖에 나가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지만.

은재에게 외출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명백한 이유나 조건이 필요했고,

그를 선택할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외출이 내게 왜 이리 어려울까?


아무리 오래 생각해봐도 알 수 없었다.

아마 오래 전부터 그랬던 것 같다.

은재는 친구와 약속이 생기면 불안해하고 조바심이 났었고,

한 시간 전부터, 심하면 하루 전부터 긴장했었다.

얼마나 친한지는 구애를 받지 않았다.

누구든 무슨 대화를 할지 상상하면서 긴장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유일 수 없었다.

은재가 사는 도시에 은재의 친구는 없으니까.

연고가 없는 이 도시에 정착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런 것쯤은 각오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왜 외출이, 혼자만의 외출이 어려울까?


돈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나가면 죄다 돈이라는 것을 용돈을 받던 나이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은재는 지금 이 나이에도 부모님께 적은 용돈을 받고 있었다.

그러니 적은 용돈으로 외출을 감행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일 수도 있겠다.


사람들에게 섞이는 것이 무서운 것일 수도 있다.

은재는 전화를 받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유형의 인간이다.

메일을 보내는 것도

문자를 보내는 것도

한참이나 고민하고 긴장한다.

(주로 자신의 메시지가 무례하진 않을까 고민한다)

그러니 밖에 나가서 누군가와 말을 하는 게 무서운 것일 수도 있다.


아, 적어도 세 가지는 생각해내고 싶었는데.

은재는 더 이상 자신이 왜 외출을 어려워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생활에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새로운 버릇이 생겨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이렇게 되어버려선
일도, 뭐도 할 수 없잖아


은재는 연거푸 담배를 피우며 출근을 하는 자신을 어설프게 상상하다가

죄다 그만하고 싶었다.

정말 오랜만에 든 절망이었다.

지금 죽어도 무엇이든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모든 말들이 글로 쓰면 진지해지는데

죽는다는 말이나 죽고 싶다는 말은

글로 쓰면 왜 이리 경박해 보일까?


은재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체 어떤 말로 자신의 기분을 글로 표현해야

이 절망에 가까워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아, 내가 아직 작가가 아니라서 그런가.

내가 지금 작가였다면 외출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물론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은재는 SNS에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하는 여러 사람들을 보며

질투하고 선망했다.

아니,

선망하고 질투했다.


하지만 질투엔 늘 악취가 난다고.

은재는 자신에게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은재는 도로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덮고 팔로 눈을 가렸다.

그리고 조금 울었다.


불행은 너무 찐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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