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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유진 Jul 10. 2024

습기

장마 속에서 피어난 생각

장마가 왔다.


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습하고 우중충하기만 하다.

장마일 때라도 비가 와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비가 안 와서 괜찮을까?

그러니까 농가나

지구적으로 말이야.

그런 인도주의적인 생각을, 어울리지도 않게 하면서.


마른 장마로 인한 더운 습기는

엄마를 하여금 매일 같이 새로 산 제습기를 틀게 만들었고

은재는 제습기에서 나는 열기에

더웠다.


더위에 일어난 은재는

습기가 없는 공간에서 창밖의 가득한, 어쩌면 전부일 습기를 보며

습기에 대해 생각했다.


'습기'의 '습'은 옷장에 거는 제습제를 닮았어.


거기서부터

아주 간단히 이런 연상을 했다.




나의 푸름

물기 혹은 비
(액체)

습기

곰팡이

푸름
= 나의 푸름


이 연상을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나의 푸름'을 떠올리면

푸름은 왠지 고체나 기체보다는 '액체'일 것 같다.

컵 표면에 맺히는 물방울이나

자칫 잘못하면 우리의 발을 적시는 물웅덩이,

그리고 비.

그럼 공간은 '습기'로 가득 차게 되고

습기가 자리한 공간엔 대개 '곰팡이'가 핀다.

곰팡이는 푸르고, 그 자체가 '나의 푸름'이 되기도 한다.




그래, 맞아

나의 푸름엔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의 푸름엔

습기가 있어.


그리고 그 습기가 만든 곰팡이는

푸르고, 아무리 박박 문질러도 잘 지워지지 않고

햇빛이 도사리지 않는 한

또 생기고 마는 거야.


또, 또

가장 억울한 것은

곰팡이가 생기는 것은 쉬우면서

지우는 것은 어렵다는 것.

하지만 세상의 이치가 대부분 그렇게 치사하다는 것.

그래서 나을 수가 없다는 것.

그러니

이미 생긴 것에는 무심해지 수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


無心

무심해진다는 말을 쓰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은재는 이제 더는 자신의 일로,

자신의 좀먹는 감정으로 울지 않는다는 것.


흔히 우울자를 떠올릴 때 사람들은

하루종일 엉엉 울기만 하는 사람을 떠올릴 것 같다.

(그래서 아까의 연상에서도 쉽게 액체를 떠올렸다.)

물론 그것도 맞다.

울기도 많이 울었으니까.

하지만 푸름과 함께 한 지 오래 된 우울자로서

우울자의 표정을 묘사하라면 무심한 어떤 것을 그려낼 것이라

은재는 생각했다.

아니, 확신했다.



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



그러니까 은재의 푸름은,

은재의 푸른 곰팡이는

습기로 만들어졌다가 이내 딱딱하게 말라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화(硬化)되어 문질러도 희미해지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햇빛이라도 있었더라면

색이 증발하여 희미하게 말라버렸을 수도 있었을 텐데.


곰팡이를 이기는 것은 햇빛뿐이라는 것을

은재는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 다리에 곰팡이가 생겼을 때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은재는 그러면서도 햇빛을 들이지 못했다.

아, 그것보다도

햇빛을 들이는 방법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게 더 정확하다.


마음의 공간에

 햇빛을 들이는 방법들은 아주 다양하고 많다.

그 중 은재가 생각하기에

가장 직설적이고 낭만적인 방법은

물리적으로 햇빛을 받는 이다.


하지만 은재는 간혹

'햇빛을 받는다고 정말 마음에도 햇빛이 든다고?' 하며

의심을 했다.

그래서 주변에서 은재를 밖으로 끌어내려는 노력이 있었음에도,

그럼에도 밖을 나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꼭 우울하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은재는 자신이 이 푸름에서 낫지 못하는 이유가

비로소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은재는 자신이 불쌍해졌다.

왜 자신으로 태어나 이런 대우를 받는지, 싶었다.

하지만 이내 정확히 무슨 어떤 것을 불쌍하게 여겨야 하는지 헷갈렸다.

내 육체?

내 정신?

아니면 그 모두?


은재는 침대에서 일어나 마음의 의자에 기대 앉아

(그 의자는 발이 세 개뿐이다)

벽면에 가득한 푸른 곰팡이들을 보았다.


그러면서

은재는 자신의 마음은 언제라도 팔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누구도 곰팡이가 있는 집을 사려고 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은재의 마음은 팔리지 않는 집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되고 만 것이다.


아,

다른 생각을 하면 안 돼.

그럼 넘어지게 될 거야.


은재는 마음에서 거미줄처럼 퍼진

푸른 곰팡이를 한 없이 바라봤다.


마른 장마에 공간은 습하고

커튼은 닫힌 마음처럼 닫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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