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부터 무진장 멀어지기
은재는 아침에 눈을 뜨면 하는 버릇이 있다.
왼손을 쭉 뻗어 손가락을 살피는 일이다.
손가락이 잘 있나, 싶어서가 아니라
수전증으로 떨리는
손가락 자체가 오늘도 낯설게 느껴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런 현상을 이인증이라고 한다.
이인증을 구글에 쳐보면 제일 먼저 이렇게 뜬다.
하지만 너무 어려운 말을 집어치우고
간단히 이인증을 설명하자면
내가 보는 나의 시야
그 속에 걸쳐진 모든 것들이 객체의 시야로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즉, 남의 눈)
그래서 나의 시야에서 보이는 것들이
무척이나 낯설게 보이고
그래서 손을 뻗어 만져보면
그것도 무척이나 이상하게 느껴진다.
(남의 손으로 물체를 만지는 기분이라고 하면 믿을까?)
특히나 나의 시야를 통해
나의 어떤 것을 볼 때 그 기분은 더 극대화 된다.
그래서 은재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손가락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좌절 아닌 좌절을 한다.
또 내 것 같지 않아
하면서.
그러면서 은재는 생각했다.
'자신을 객체화하면 더 좋은 거 아니야?
이성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잖아.'
이렇게 말하는 긍정론자들이 있지 않겠느냐고.
그렇다면 은재는 "현실감 상실"이라는 말을
위의 설명에 덧붙이고 싶었다.
이인증은 단순한 객관화가 아니다.
현실 감각이 텅 비어버리는 데서 오는 또 다른 감각일 뿐이니까.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까?
꿈을 꾸고 있는데
그 주체가 내가 아닌 기분이랄까?
물론 이건 비현실과는 다르다.
이인증세로 괴롭다고 해서 나 자신을 히어로로 생각하진 않으니까.
그러니까 이인증은,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이 무채색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히어로와는 거리가 멀지?
히어로는 채도가 높잖아.
은재는 집 복도를 걸어갔다.
걸으면서도 꿈에서 걷는 기분이다.
그러면서 은재는 몇 년 전, 이인증세로 괴로워했을 때
의사가 자신에게 한 말을 떠올렸다.
이인증세를 무시하면 안 돼요.
지금 하는 자해가 더 심해질 수 있어요.
그리고 정말 그랬다.
이인증세가 심해졌을 때, 은재는 가장 강력한 자해를 했었다.
은재는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자신의 손목에 있는 흉터를 보았다.
전혀 아프지 않았지.
놀랍게도 전혀 아프지 않았던 그때를
은재는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여전히 꿈에서 괴로워하는 기분.
심할 때는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도 그랬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데도 내 것 같지 않아서
막 떠들어댔다.
그리고 돌아와 자신이 말한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거나
온전히 기억해서
괴로워했다.
-
고양이가 은재에게 다가왔다.
은재는 컵을 싱크대에 놓고 주저앉아 고양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자신의 얼굴을 부볐다.
보들보들한 감촉과
살아있는 것들에게서 느껴지는 온기가.
느껴지고 이내 은재는 마음이 가라앉았다.
고양이는 은재를 현실로 복귀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은재는 마음 속으로 성공했네, 라고 중얼거리며 다시 한 번 고양이의 두 뺨을 만졌다.
이 놈을 데려오려 마음 먹었을 때
은재는 살아갈 이유가 필요했었다.
이기적이지만 무언가를 키우면서라도 살아야겠다 싶었다.
키운다는 것은 객체의 것이 아니니까.
온전히 나의 현실로 이 아이를 데려오겠다는 마음.
물론 주변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지금은 은재뿐만 아니라 모두가 이 아이를 사랑한다.
하얀 너의 푸른 눈동자를 보면서.
언젠가의 이별을 떠올릴 때마다
은재는 마음 한 구석이 덜컥 내려앉지만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 더 괜찮아져 있을 테니
조금만, 평범하게 슬플 것이라고 생각했다.
은재는 여섯 알의 알약을 목으로 넘기고
괜한 소름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왼손을 뻗어
손가락 하나하나를 움직여봤다.
여전히 나의 것이 아닌 것 같고
광고지에 나오는 손가락 같았다.
하지만-
은재는 자신의 발 근처에 서있는
고양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네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
그때가 온다면 그때의 나는,
지금처럼 나의 손을 뻗어 확인하지 않을 거야.
내가 지금 살아있는 건지,
내가 사실 죽은 게 아닌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그러니까 영영 깨지 않을 꿈을.
그랬으면 해.
루니야, 엄마는 그랬으면 해.
회복의 기류가 당장 내일은 아닐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