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한 친구와 헤어지는 일
은재는 고등학생 때까지 살면서
친구를 잃어본 적이 없었다.
타고난 성질이 윤택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 시절 은재는 공부가 주된 목표였고, 그에 따라
친구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거였다
처음
은재가 친구에게 거절 당한 것은
스물 한 살, 봄이었다.
당시 은재는 고교시절 오래 사귄 애인과 헤어졌다.
그가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면서 헤어졌지만
은재가 도중에 다른 남자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음으로 부자연스럽게 헤어졌다.
(그리고 바람을 피운 남자와는
순리처럼 잘 되지 않았다)
은재는 그때 자신이 실수를 했다고 판단해서
전 애인을 붙잡기도 하였으나
그건 회복될 수 있는 실수가 아니었다.
그래서 은재는 힘들어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그 이유가
전 애인을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아서?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혼자 있는 게 두려워서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때 그걸 알아차린 친구 A양이 말했다.
우리 남자로부터 해방되자
친구 A는 그리고 "독립적인" 삶을 살자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약속을 했는데
은재는 다른 경로로 만난 연상의 남자와 연애를 했다.
그리고 친구 A에게 뒤늦게 말했다.
친구 A는 은재에게 무척이나 실망했다.
그리고 헤어지자고 말했다.
두 번째도 이와 비슷했다.
친구 B는 대학동기인데,
스물셋에 절연했다.
친구 B는 은재보고 애인하고만 논다며 핀잔을 주었고,
친구로서 이행해야 할 사소한 것들을 잊는다고,
그리고 고마움을 모른다고 헤어지려는 때에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 A와 B는 모두
남자에 의존하는 것을 건강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이별하게 된 거였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보다
독립적으로 서있는 것이 모양새가 멋지니까.
게다가 '남자'에 의존하는 것은
더욱이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보다 부정하게 보인다고.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은재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홀로 서있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고.
선천적으로 마음의 다리 하나가 병들어있는 사람이 있다고.
은재는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울증이라는 푸름이 찾아온 이상
자신도 그런 종류의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은재는 친구가 은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심하게는 친구가 은재의 우울증을 받아드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 은재는
그 관계들의 끝에 자신의 우울증이 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은재는 줄곧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내가 우울하지 않았더라면.
너희들은 여전히 내 친구로 남았을 텐데.
은재는 그 모든 끊어진 인연을 미련하고 있었다.
타당하게 버려졌다고 생각함에도.
은재는 자신이 죽었을 때
누구누구가 올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수는 한 손에 다 들었고,
그 마저도 불안정했다.
그런 은재를 보고 어제 소맥을 한 잔 기울이며
지금의 애인이 그런 말을 했다.
장마를 알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김치전은 이상하게 달았다.
너 스물여섯이야
앞으로 만들어갈 인간관계가 더 많아
그 안에 머물러 있지 마
그냥 걔네들은 타이밍이 안 맞았을 뿐이야
은재는 그 말이 실로 위안이 되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지금 모조리 끝나버린 것은 아니라는 말이.
온전히 나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말이.
은재는 너무 뒤돌아보지 않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지금 애인의 말대로
그들은 나와 시절이 맞지 않은 것이라고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