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찾아온 푸름
아침이다.
젠장.
제기랄.
젠장.
아침이 온 것이다.
은재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부엌에서 들리는 엄마의 손 소리.
누군가 화장실에 가는 소리.
누군가 삽으로 모래를 파는(고양이 똥간을 치우는) 소리.
젠장.
다시 자긴 글렀잖아.
은재는 패배감 속에 눈을 떠서 휴대폰을 확인했다.
10시.
7시쯤 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고 잠들었으니
일어날 법도 한 시간이다.
한숨을 쉬며 은재는 허리를 세우고 일어났다.
오늘로 푸름과 함께한 지
3주가 되었다.
나는 지금 푸름 속에 싸여있어.
은재는 스스로의 상태 판단을 그렇게 했다.
그러니까
푸름이 꼭 안개 같아서 멀리 있으면 꼭 그것에 안겨있는 것 같은데
은재의 곁엔 또 아무도 없어
(그게 자의적인지 타의적인지 알 수 없다)
꼭 그런 짝이라는 것이다.
은재는 일어나 부엌으로 걸어가 찬물을 마시고
곧장 방으로 들어왔다.
부모님과 대화를 하지 않은 지도 보름이 되어간다.
은재는 자신이 저지른 불효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생각해서 반성을 했을 거라면
진작 약부터 끊었으리라 생각했다. 웃으면서.
은재는 자신의 책상을 불편하게 바라봤다.
정리가 되지 않은 책상은 꼭 전쟁이 끝난 황무지 같았다.
이젠 그 어떤 열정도, 열의도, 피도 없는.
하지만 전쟁터와 다른 것은 은재는 언젠가 저 자리에 앉아
뭐든 해야 한다는 것에 있었다.
은재는 올해 2월부터 취업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숱하게 많은 공모전을 나갔지만 수상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독립출판을 한 것은 한 번의 에피소드로 끝났으며
은재의 나이는 될 대로 먹어갔고
은재에겐 키워야 할 고양이 두 마리까지 있어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은재는 올해
학원 강사 면접부터 일반 사무직 면접까지 봤다.
하지만 학원 강사는 은재가 푸름을 겪으면서 느낀 기억 장애로 한계에 부딪혔고,
일반 사무직은 컴퓨터 관련 자격증이 없다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은재는 학원 강사는 마음에서 접고
일반 사무직을 위해 자격증을 준비했다.
그래서 지금 필기는 합격한 상태다.
그러니 지금 실기 준비를 열심히 하여 자격증을 취득하면 되는데
웬걸 푸름이 찾아온 것이다.
은재는 곰곰이 생각했다.
왜 자신에게 푸름이 찾아왔는지.
이유가 없는 줄 알았는데
은재의 시야에 책 한 권이 보였다.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려고 갔던 서점.
그 서점에서 은재는 무심코 소설책 한 권을 샀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면 섭하지.
아니,
은재는 자격증 문제집보다도 제일 먼저 소설이 가득 찬 서재로 들어가 이것저것을 구경했었다.
불순해진 목적과
들뜸과 시기가 공존한 마음으로.
그리고
<우주에서 가장 밝은 지붕>이라는 책을 사서 공부가 힘들 때마다 읽었는데
읽으면서 글이 좋아서, 그러니까 글을 쓰는 행위가 너무 좋아서
선망해서
갈구해서
은재도 모르게 공모전에 몇 작품을 냈다.
그게 시발점이 된 것일까.
그럼 뭐해,
지금 제대로 쓰지도 못하잖아.
정말 글을 갈구해도
새로 써서 공모전에 글을 내는 것,
투고를 하는 것도
언제부턴가 글을 전혀 쓰지 못하게 되었으니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다른 글이라도 써서 돈을 벌기 위해
예술을 하는 다른 친구들처럼 외주를 받는 것도…….
안 그래도 은재는 몇 번 휴대폰을 열어 외주 사이트에 들어가보았다.
그리고 외주를 받기 위해 시도했으나
심장이 벌렁벌렁 거렸다.
그리고 못할 거야 못할 거야 못할 거야 라는 생각이 끓어넘쳤다.
그럼 자격증 공부를 다시 하든가!
속으로 그런 외침이 들렸지만
은재는 스스로가 사무실에서 엑셀을 다루며 일을 하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은재는 이제 와서!!
왜 영웅심리처럼 글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지,
은재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은재의 현 상태는 이랬다.
여러 개의 푸름이 각기 다른 꼬리를 달고
자욱하게 은재에게 맺혀서는.
은재는 다시 담배를 물었다.
도대체 몇 개비를 피워야 이 꼬리들을 정리할 수 있을까.
제발 한 가지로만 우울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