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를 보는 타인들의 마음
【19세 미만은 들어오지 마세요】
누군가
손목에 상처가 있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이 사람이 자해를 했던 거야
라고 생각한다면
높은 확률로
자해한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해의 상처와
그냥 상처를 어떻게 구분하냐고?
우리가 말하기 때문이지.
이건 자해라고.
내가 그런 거라고.
그 만큼 자해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누군가에게 보이길 바란다.
(하지만 연구 결과가 없기 때문에 일반화하지 않으려 한다)
은재는 자해를 하면
꼭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일단
그때 자해를 한 이유가
'내가 이만큼 힘들어!'라는
보여주기식의 자해이기 때문이고
연쇄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기 때문이었다.
은재의 상상으로는
은재의 상처를 본 사람들은
슬퍼하거나
사과하거나
공감하는 거였다.
하지만 은재가 상상처럼
현실은 단색이 아니라
매우 다채로워서
예상을 빗나갔다.
처음 은재의 자해를 본 엄마는
은재에게 화를 냈다.
넌, 어떻게 된 애가!
그러면서 은재의 방에서 벗어나
씩씩 화를 냈다.
그리고 아빠는 별다른 말 없이
은재에게 빨간약을 발라주고
상황 종료.
(상황도 무척 빠르게 종료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애인도
늘어나는 은재의 상처를 보고
처음에는 슬퍼하다가도
이내 화를 냈다.
은재는 처음에 당황했다.
하지만 아예 모를 마음도 아니었다.
그리고 애인은 자신의 반응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내면 누구라도 화를 내.
그게 너 자신이어도.
그런 설명은 필요 없는데.
은재는 생각하면서
어제 새벽 자신이 저질러놓은 상황을
애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러니까 자해라는 건
자기위로식 그것과 보여주기식 그것이 있으면서
자기위로식이든 보여주기식이든
그 상처가 남들 눈에 보이고
그게 자해라고 인식되는 순간에!
온전히 자신의 일이 아니라
관계적인 일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재는 방금
물을 마시려고 부엌에 가는 동안
엄마가 자리를 피한 데의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누군가 망상일 거라 생각할지도
하지만 엄마가 나를 피하고 있다는 것은
망상이 아니라
백프로의 확신이다.
자해는 키스와 같다.
입술을 맞닿았다는 이유로,
상처를 시선했다는 이유로
어떻게든 감정을 일으키지.
(그게 폭발적이든 미미하든 사건이 되는 건 매한가지다)
하지만 키스만큼 매혹적이지도 않아.
매혹적이라고 느끼는 건 오직
나 자신뿐이고
타인들은 모두 경멸하니까.
은재는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의 상처가 너무 비루해 보였다.
누구도
괜찮아?
라고 물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은재는 머리를 감싸고 무릎에 파묻었다.
뜨거운 숨이 올라왔다.
여름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사람이라서 그런가.
숨이 너무 뜨거워서
또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
.
.
관계적인 일이 되어버린 자해는
늘
골칫거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