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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유진 Aug 03. 2024

저는 옛날의 제가 좋아요

우울증과 과거에 대한 집착

은재는

언제나

지금의 자신보다

하루라도 더 전에 있는 자신이 좋았다.


그 이유는 무척이나 많지만

딱 하나를 꼽아보자면

은재가 그리워하는 과거의 모습이

지금보다 의욕적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은재는

물 먹은 솜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뚝뚝 물기를 떨어뜨리고 있으니까.



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


은재는 때로는 집착적으로 과거를

회상할 때가 있었다.


그때의 자신이 아닌 지금의 자신을

죽도록 미워하거나

지극히 혐오하거나

발버둥치며 떠나고 싶었던 적이

너무나도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은재라고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은재가 과거에 집중했던 계기는

처음 정신과 진료를 받을 때였다.


정신과에서는 은재의 우울의 근원을 알기 위해

몇 가지 과거를 회상하는 질문을 던졌다.


부모관계가 어릴 때부터 어땠는지

어릴 때 크게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는지

우울감을 처음 느꼈던 때가 언제인지

등등.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질문들로

은재의 우울의 첫 걸음을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은재가 탐구하기 시작했다.

빈 종이에 무턱대고 쓰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망가졌는지.


그러면서 은재는 과거의 자신과 마주했다.

그리고 은재는 페르소나를 창조했다.

오로지 자신의 과거로만 만들어진 페르소나를.


은재의 페르소나는 이렇다.


열심히 공부하고 탐구하는 성격

친구 문제에 무심한 태도

글을 사랑하여 매일 글을 쓰는 습관

저체중으로 날씬한 몸매

안전하게 은재를 시켜주는 울타리 속에서 안전하게 행동하는.


그리고 은재는 그 페르소나를 갈망하게 되었다.

지금 은재에게 위와 같은 것들이 전부 없었으니까.

은재에겐 없는 것들이었다.

있었다가

모두 사라진 것들.


시간이 지나면서 이 페르소나는 점점 성장했다.

은재가 무슨 성과를 내거나

기쁜 일이 있거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날이 있으면

그것은 은재의 것으로 남는 게 아니라

페르소나의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은재는 스물여섯이 되어서

열일곱 살의 은재만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스물다섯의 은재,

심하면 어제의 은재까지 갈망하게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은재의 페르소나는 은재의 꿈까지,

물리적인 꿈까지 좀먹었다.

어제 은재는 공모전에서 상을 타는 꿈을 꿨는데

그것도 페르소나의 것이 되어버렸다.

은재는 페르소나를 선망한다.

은제의 페르소나는 이미 몇 번의 공모전에서 상을 수여받았다.


은재는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지금의 내가 너무 후져


자꾸 그러니까,

자꾸 후지니까 되돌아보는 거야.


지금의 은재는

의욕적이지도 않고

친구도 없으며

글을 전처럼 유쾌하게 쓰지도 못하고

뚱뚱하기만 하며

은재를 보호해주는 울타리는 전부 부서져있다.


그러니까 후진 상태.

이러니 그때의 내가,

페르소나가 모처럼 아름다워 보일 수밖에.


아,


정신과 상담의 끝은

돌아보지 말자는 거였다.

은재의 우울증에 원인을 찾는 것을 포기, 혹은 종결하고

앞으로의 회복을 추구하자는 거였다.

따라서 정신과에서는 은재에게

더 이상 과거에 대해 묻지 않았다.


내게 선망하는 법을 알려줘놓고서.


은재는 속이 아프지만

정신과에서 종결을 선언한 것과 같이

원인을 찾는 것은 그만 두었다.

은재는 어딜 가서나 충실한 환자니까.


하지만 페르소나는

여전히 있다.

기다렸다는 듯이 은재의 앞에 서서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지금도 봐.

저기서 알록달록한 깃털을 뽑내잖아.


은재는 여전히 과거에 발 하나를 담그고 있었다.

언제까지?

그건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은재는 한 가지를 알았다.

과거에 머물고 있는 사람에게 발전은 없다는 것.


발전이 없는 삶이다.

은재는 그런 생각을 하니 페르소나를 버리고 싶었다.

다 먹은 패트병을 버리듯.

던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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