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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유진 Aug 14. 2024

평범한 정신과 병원 일지

첫 번째

2021년 9월

은재는 자신의 푸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데

공황장애가 왔다.





심장이 아프고

숨을 헐떡거리며

교수님의 말씀이 외계어처럼 들리며

활자가 읽히기 않았다.


전조 증상을 싸그리 무시한 뒤여서

은재는 곧바로 화장실로 피신해

숨이 제대로 쉬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괜찮아진 것 같아 교실로 들어가면

또 같은 증상이 찾아왔고

결국 은재는 짐을 모두 두고 당시 남자친구 집으로 향했다.


당시 남자친구는 조심스럽게

정신과 방문을 바랐다.

제대로된 곳에서 제대로된 치료를 받는다면

나아질 것이고

그것은 네가 지는 것도 아니고

두려워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애는 학교에도 상담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은재에게 말해주었다.


은재는 처음부터 정신과 병원에 가는 것보다는

학교라는 울타리에 있는 상담 서비스가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고,

그래서 중앙 도서관 끝에 있는 상담센터를 발을 옮겼다.


하지만 상담센터에서는 곧 은재에게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를 요구했다.

정확히 말하면

약을 복용하면서 상담을 병행하는 것이

그때의 은재에게 최선일 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결국 은재는

2021년 10월,

처음으로 대학교 근처 정신과 의원에 방문했다.


처음 병원에 방문했을 때

은재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예약된 시간이 다 되어

곧 병원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은재는 너무 무서웠다.


정신과 진료는 수술도 없고

주사를 맞지도 않는데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지금 생각하면 잘 모르겠지만

그 날 일기장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다.


병원에 대기하는 모든 사람들은 감기에 걸린 사람들 같았다.
단지 감기에 걸려 아픈 사람처럼 표정이 없었다.
나는 지금 내 표정이 어떤지, 생각했다.
너무 감정적이야.
나는 그들처럼 평범한 표정을 짓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무서웠다.


은재는 함께 가주겠다던 당시 남자친구의 도움을

거절한 것이 조금 후회되었다.

그리고 간호사가 은재를 불렀고,

초기 진료를 위한 검사지를 받았다.


첫 정신과 진료는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순조로웠고 원장 선생님은 친절하셨다.

그래서 은재는 덜컥 울어버렸고

원장 선생님은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자살 생각을 하셨어요?

은재씨는 지금 굉장히 힘든 상태예요.

이렇게 어린 사람이 뭐 때문에 여기까지 왔지?

와 같은 질문과 말씀을 하셨는데,

은재는 그 말들이 모두

푸름에 가득했던 당시 듣고 싶었던 말들이어서

또 울었다.


이후 은재는 술술 모든 이야기를 했다.

이런 증상이…

이런 생각이…

이런 행동을…

이런 불안이…


그리고 원장 선생님은 은재에게 처방을 내리셨다.

극심한 우울감과

불안장애.


은재는 자신의 병명을 듣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다.

자신이 느낀 원인불명의,

실체가 없는 푸름이

명명되어졌다는 사실에 그랬던 것 같다.


은재는 그 병원을 그해 겨울까지 주 1회 다녔다.


하지만 은재가 곧 기숙사를 나와 친척 집으로 들어가면서

은재는 병원을 옮겨야 했다.


이모는 은재에게 병원을 한 군데 추천해주셨다.

은재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해당 병원으로 갔는데,

거긴 어린 애들이 많았다.

해당 병원이 아동 심리치료가 주된 진료였고,

언어치료나 행동치료도 병행했기 때문이었다.


은재는 부산스러운 병원의 분위기가 불편했다.

그리고 뭔가,

이런 어린 아이를 다루는 병원에서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반신반의,

그냥 약만 타가자, 라는 생각으로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병원 선생님은

아이들을 다루는 특유의 다정함을 탑재해

무척 자상하셨고

은재가 복용해야 할

약 하나 하나를 설명해주시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래서 은재는 일주일에 한 번 병원에 가는 날이

자신을 어린 아이처럼 달래주는 날과 같아서

환승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게 병원에 방문했다.


물론 갈 때마다

어린아이들의 부산스러움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어떤 표정으로 있어야 할지

늘 가늠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때만 해도

약국에 가는 일도 어색했다.

약의 이름이 은재의 이름표 같아서

약사 선생님이나 아르바이트생이 은재와 처방전을 번갈아 보며


정신병 환자군


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은재는 애써 괜찮아,

평범한 사람처럼 보여야 하는지

아니면 정말 정신과 환자처럼(?) 보여야 하는지

자신의 포지션을 알 수 없어서

난감했었다.


물론 이제는

그런 것 따위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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