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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유진 Aug 17. 2024

평범한 정신과 병원 일지

두 번째

은재는 고향으로 내려왔다.

휴학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병원을 옮기는 것이 필수불가결 했는데,

은재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정신과를 택했다.



오일파스텔을 잘 다루고 싶습니다.



평판이 좋은 정신과를 알아볼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은재는 어리석게도 자신이 만날 사람들 중

그렇게 나쁜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으니까.

그래서 거리가 중요했다.

꾸준히 다닐 수 있는 거리가 중요했다.


고향에서 처음 방문한 병원은

집에서 택시를 타고 얼마 가지 않는 곳에 있었다.

처음 들어갔을 때

병원에서는 라디오가 틀어져 있었다.


주광색 조명에 라디오라 틀어진 풍경,

감기에 걸린 듯한 사람들의 표정

은재는 정신과를 처음 왔을 때처럼 긴장했다.


그리고 은재는 또 한 번 진료를 받기 위한

사전 질문지를 작성했다.


사전 질문지는 기묘했다.

아니, 그 병원이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전 질문지여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당신은 얼마나 우울하신가요?

얼마나요?

얼마나요?

라고 수차례 묻는 것 같았고

질문지를 빤히 들여다보고 집중하다보면

쉽게 우울해졌다.

내 처지를 파악해서 그런가.

은재는 착찹한 기분으로 질문지를 모두 쓰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정신분석 상담, 프로이트 책이 눈에 띄었다.

학교를 다닐 때 정신분석 상담 수업을 들은 바 있어서

은재는 조금 반가웠고

옆에 길게 있는 의자가 신기하고 이상했으나

마음이 조금 풀렸다.


하지만 그 병원의 원장 선생님은 너무 무뚝뚝했다.

소위 말하자면 T인 선생님.

환자인 은재의 말에 공감보다는 판단을 내려서

은재는 왠지 모르게 상처를 받고

불편했다.


사실 정신과 진료는

현재의 심리상태와 나타났던 증상들을 가지고

처방을 하는 목적도 있지만

일종의 상담비를 받기 때문에

상담이 기본적이다.


그런데 그 원장 선생님은 상담의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더구나 원장이라기보다는

일개의 직원 같은 느낌?

왜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하지만 그 병원의 지리적 장점과

은재에게 기본적으로 탑재된 게으름에

해당 병원을 1년 정도 다녔다.


그리고 은재가 지금 애인의 자취방으로

도피적 가출을 하게 되면서

병원을 옮기게 되었다.


병원을 옮기는 일은

초기 질문지를 작성하고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귀찮고 성가셨다.

그래서 되도록 병원을 옮기는 일은 피하고 싶었지만

은재는 가출을 해야 했고,

애인의 집은 그 병원과 너무 멀었다.

그래서 병원을 바꾸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지역카페에서 나름 유명하고

거리도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다.

애인의 자취방에서

버스를 한 번만 타면 되었고,

마음이 내키면 걸어가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 병원은 간호사가 너무 부산스러웠다.

서로 수다를 떠느라

은재가 카드를 내미는 것을 못 볼 정도였다.

원장 선생님은 적당히 괜찮았는데.


하지만 그 병원도 오래 가지 못했다.

원장 선생님께서 은재에게

대학병원을 예약할 수 있는 의뢰서를 두 차례나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병원의 원장 선생님은

은재의 우울 강도나 불안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되었는지

(그때 은재는 자해를 자주 했다)

대학병원에서 복잡하고 자세한 치료를 받기를 권했다.


한 번은 거절했다.

대학 병원이라는 것에서 느껴지는 심각성을

은재 스스로 받아드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계속해서 원장 선생님이 대학병원 진료를 바라셔서

은재는 밀쳐지듯이 대학병원으로 갔다.


대학 병원은

두 번째로 다녔던 병원보다

부산스러웠다.


그래도 다양한 과들이 있어서,

다들 각자의 볼일을 보러 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이제는 만렙.

병원에 오는 것은 만렙이라

귀찮은 사전 질문지를 간단히 작성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전문의 선생님은 친절하셨다.

굉장히 다정하시고

재치가 있으시고

은재를 처리해야 할 업무 보듯이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전문의 선생님과도 오레 가진 못 했다.

의료 파업이 있고 전문의 선생님들이 대거 진료를 안 보시게 되었다.

은재는 불안했다.

정신과에서 담당의가 바뀌는 일은

환자에게 더운 여름 차양이 사라지는 일과 같았다.


은재는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사회적인 일이니

은재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은재의 담당의는 한 교수님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다행히

전문적인 다정함과 세심하신 분이셨다.


다행이다.

저번에 간호사가 예약을 잘못 잡아서

다른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은재의 병원 역사상 최악이었다!


만들어진 눈빛에

만들어진 말투

의례적인 말들.


가장 최악인 말은 이거였다.


 정말 힘드셨겠어요.


그게 뭐야.

놀리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이제 은재는 대학병원에서

한 달에 한 번 진료를 본다.

일주일에 한 번 갈 정도로 심각하지 않은,

안정된 상태라고 볼 수도 있고,

은재가 귀찮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


이렇게 병원 일지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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