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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유진 Aug 21. 2024

우울증 환자가 살이 찌는 이유

48키로에서 70키로까지

은재는 우울증 약을

3년 째 복용 중이다.


그러면서 은재에게 어떤 변화가 나타났느냐면


일단은 은재를 괴롭혀온 푸름,

우울감이 완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재는 더 이상

죽고 싶다는 생각을 깊게 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된 건 아니었지만)


그리고 불안 증세가 완화되었다.

은재는 하루의 성벽을 불안으로 채우고

원인불명의 죄의식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은재는

살이 쪘다.

조금도 아니고

무려 20키로가 넘게!


결국 그렇게 된 것이다.



동경하는 아오이 유우..



은재는 원래 48키로의 저체중이었다.

저체중의 삶을 오래 살았고,

은재가 그 삶을 살면서

가장 싫어했던 말은


좀 찌워야겠다.


였다.


은재는 그 말이 너무너무너무 싫었다.

당시 은재는

자신의 몸이 기아 같아서 싫었고,

빈곤해 보이는 느낌이 들어서 싫었다.


심지어

당시 은재는 많이 먹지 않는 것도,

남들만큼 먹는데도 찌지 않는 것이어서

은재 스스로도 답답했던 기억.


그럼 지금은 좋아야 하는 거 아니야?


누군가 그렇게 물을 수도 있겠지만

은재의 몸무게는 멈추지 않는 80톤 트럭이었다.


은재는 순식간에

20키로가 쪘다.

그러니

적응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받아드릴 수도 없었다.


흔히들

우울증 약을 먹으면 살이 찐다고 한다.


그 말이 은재가 약을 처음 먹었던 때에는

잘 들리지 않았다.

살이 찌는 것보다 생존이 먼저였으니까.


그리고 믿을 수도 없었다.

평생 저체중의 삶을 살았던 은재가

살이 찌게 될 거라니.


그래서 일단 약을 먹기로 한 거였다.

그리고

1년,

2년,

3년.

체중은 점차적으로 불어나갔다.

체감하지 못하는 선에서

지속적으로.


그래서 은재는 결국 70키로가 되었다.


눈 깜짝할 새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런 이유에서였다.


▶ 약을 먹으므로써 오는 몽롱함이 은재를 움직이지 않게(못하게) 했다.
    은재는 어떤 경로로든 움직이지 안(못) 했고,
    집 안에서도 잘 움직이지 안(못) 했고, 잠만 잤다.
    두뇌활동도 마찬가지였다.

▶ 음식을 먹는 데서 오는 세로토닌의 증가를 맛봤다.
    한 끼의 식사를 만족스럽게 하는 것을 원래도 좋아했지만 그 주기가 잦고, 양이 많아졌다.
    애인의 말에 의하면 은재는 당시 '끝까지'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조건 "약 때문이야!"라고 볼 수는 없었다.


몽롱함을 이겨내고

움직였다면,

폭식으로 인한 행복보다는

다른 행복을 찾았더라면

지금처럼 살이 찌지는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또 하나 명백한 것은

약을 먹으므로써 오는 몽롱함을 이길 만큼

은재에게 어떠한 의지가 없었고,

(죽음을 갈망하는 의지를 꺾기 위해선 다른 의지도 꺾이는 모양이다)

다른 행복을 찾기엔

음식으로부터 오는 행복은 편리했다.

(게다가 요샌 배달도 잘 되니까)


그래서 은재는 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살이 찌므로써 은재는

모든 하의를 고무줄로 바꾸어야 했고,

튼살을 가리기 위해 더운 여름에도 긴 옷을 입어야 했으며,

잠자리를 할 때도 불편하게 불을 꺼야 했으며,

수도 없이 자주 제모를 해야 했고,

몸에서 나는 호르몬 냄새를 가리기 위해 몇 번이나 씻고

향수를 뿌려야 했다.

(살이 찌면 체모가 굵어지고 호르몬 냄새가 나는 걸 경험할 수 있다)


살을 빼야겠다고

생각은 무수히 들었지만

영향을 주는 약을 줄일 수도 없었고,

운동을 하기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더구나 은재가 살이 찌는 부위는

팔다리보다도 배다.

배가 유독 많이 나왔다.


그러다 은재는

어느 날 담배를 사러 편의점으로 갔는데

이런 말을 들었다.


임산부는 담배 피우면 안 돼요.


은재는 너무 당황스럽고

너무 놀래서

웃고 나왔지만

그 날부터 심각성을 느꼈다고 할까.


은재는 담배를 피우면서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운동 동영상을 찾아봤다.


그러면서도 울고 싶었다.

내가 이럴려고 이렇게 된 게 아닌데.

내가 원래는 날씬했었는데.

날씬한 게 괴로울 정도로 날씬했었다고.

이런 삶을 나도 바란 게 아닌데.

난 조금 더 괜찮아지고 싶었던 건데.


하지만 알았다.

아무리 속으로 뱉어낸다한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은재는

그저 전보다 살이 많이 찐 은재일 뿐이었다.

오로지 은재만 그 사실을 받아드리지 못할 뿐.


나만 오로지, 나만.


은재는 운동 영상을 찾아보던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통통한 몸매로 모델을 하는 많은 여자들을 생각하며

왜 자신은 그렇게 당당하지 못할까도 생각했다.


은재는 일어나 전신 거울 앞에 섰다.

불룩 나온 배와

울룩불룩 튀어나온 팔뚝,

허벅지에 튼 살,

두꺼워진 목.


하.


어쩌다 이렇게 됐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

은재는 다시 좌절하고 침대에 누웠다.

눈을 뜨면 예전의 몸으로 돌아갔음 싶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우울증 약을 먹고 싶다고 은재에게 말하면

분명 살이 찔 텐데 괜찮겠냐고,

살이 쪄도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겠냐고 묻고 싶었다.


물론 후자에 대해서

은재는 절대적으로 NO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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