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산책
우울증 환자가 밖을 나가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집에서 나갈 수 있을까?>에서 말했듯이
우울증을 이겨내는 방법 중 하나가
물리적인 햇빛을 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만큼,
중요하다는 말에 쉽게 어려움이란 단어가 결부되듯
우울증 환자에게 산책이란
하나의 과업이며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다.
은재가 밖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집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집밖은 위험했다.
너무 많은 자극들로 채워져
은재를 수없이 공격했다.
특히나 ADHD 진단을 받은 은재에게는
어디에다 집중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런 은재도
산책을 할 때가 있다.
이제 더는 안 된다고 생각할 때다.
이제 더는 집에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 때.
이러다간 지박령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할 때.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그럴 때 은재는 먼저 입어야 할 옷을 고른다.
편하게 입고 걸은 건지,
누군가에게 약속이 있어 걷는 여자처럼 보이게,
그렇게 입고 걸을 건지.
그러기 위해 몇 번 옷을 입고 벗는다.
여름엔 이 과정에서부터 땀이 난다.
혼자 있을 때는 에어컨을 잘 틀지 않으니까.
옷을 다 갈아 입은 뒤에는
어디를 걸을지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그곳으로 시작해 오르막길을 걸을지,
그곳을 마지막으로 내리막길을 걸을지.
아니면 버스를 타고 이 마을 밖으로 나갈지.
(하지만 마지막 옵션은 잘 선택하지 않는다)
길을 정하면 걷는다.
오후 3시.
하교를 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 아이들을 데리러 온 엄마들도 보였다.
그러면서 왜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사람은
여전히 엄마들인지 무심코 생각했다.
날씨가 변하는 만큼도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다시 걷는다.
오르막길을 지나 학원가로 들어서니
더 많은 아이들이 보였다.
학원을 가는 아이들을 보며
학원을 다녔던 그때를 떠올렸다.
그때 은재는 바닥만 보고 걸었다.
사람들의 눈을 쳐다보는 것이
그때부터 싫었다.
사람들이 눈으로 나를 욕하는 기분이 들었다.
피해망상처럼 망상하고는
기분이 늘 안 좋아서.
은재는 바닥을 보며 걸었다.
눈 앞에 사람이 있으면,
바로 앞에 신발이 보이면 우뚝 멈춰섰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지금도 사람들의 눈을 쳐다보는 일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그렇게 걸으며
사거리 신호등에서 컵떡볶이를 먹는
아이 두 명을 마주치곤 부러워했다.
저 나이 때로 돌아가
부모라는 단단한 울타리가 있었던 때를
즐기고 싶기도 했다.
지금 부모라는 울타리는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창살이 되었으니까.
요즘엔 같이 식사도 하지 않는다.
은재가 피하는 것이다.
엄마가 방으로 걸어들어올 때 일부러 자는 척을 하면서.
은재는 조금 씁쓸한 마음으로
학원가를 지나 아파트 후문에 피어있는
능소화를 가만히-
가만히 쳐다봤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어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은재에게 여름의 꽃은
능소화였다.
은재는 능소화를 좋아했다.
능소화의 뜻도,
능소화의 전설도 좋아했다.
하지만 아파트 후문이라 사람들이 많았다.
가만히 감상하기에는 불편해서
은재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사거리를 지나
오래된 서점을 지나
오레 전 일했던 패스트푸드점을 지나
은재는 다시 자신이 사는 아파트 단지로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30분 정도가 지나있었다.
마음만큼은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걷고 싶었지만.
은재는 오늘의 산책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
간단히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사실 오늘은
맹목적으로 달리다가 넘어진 날이다.
(맹목적인 것들은 늘 탈이 나기 마련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런 마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걷기 위해 나선 것이다.
무작정 걷기 위해.
걷고 온 지금은
그래도 무언가 해냈다는 생각에
속이 가벼웠다.
그리고
이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이상한 이론이다.
물리적인 햇빛이
나의 푸름을 조금이나마 건조시키다니.
이제 조금 옅어졌을까?
옅어진 푸름이 댄스를 추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상상하며.
조금 웃었다.
어쨌든
푸른 지박령이 되기 전에 모두 가끔은 햇빛 쪽으로.
어려운 일이겠지만
우린 그보다 더 한 것도 해봤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