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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유진 Oct 05. 2024

보글보글 카레

우울이 섞인 카레를 만들자

은재의 아빠는

카레를 싫어하신다.


당시 아빠는 군인, 부사관으로 계셨는데

군식당에서 지겹도록 카레를 먹었다는 게 이유였다.


반면에 은재는 카레를 좋아했다.

오뚜기 상표의 카레도 좋아했고,

인도식 카레도

일본식 카레도 좋아했다.


하지만

생계의 주축인 아버지가 카레를 좋아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엄마는 집에서 카레를 만들지 않으셨다.

그리고 은재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가스레인지를 혼자 다루지 않도록 배웠기 때문에

은재가 직접 만들어 먹을 수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아빠와 함께 살았던 유년 시절에

카레를 먹은 기억이 정말 정말 정말 없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은재가 처음으로 만든 요리가 카레였다.

무슨 한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엄마도 먹고 싶어 하셨고

카레를 만들어야 했다.


카레는 그런 추억이 있는 음식이다.

그리고 그것뿐 아니라 카레는 은재에게

우울이 담긴 음식이기도 했다.



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


은재는 우울하면 카레를 만든다.


많은 음식 중에서 왜 하필 카레냐고 묻는다면

사실 별다른 이유는 없지만

오래 푹 끓여야 맛있는 음식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은재는 많은 종류의 카레 중

노란색 박스에 들어있는 일본식 카레를 만든다.


박스에 들어있는 일본식 카레는

오뚜기 카레보다 깊은 맛이 나고 풍미가 좋았다.


그리고 "3분 카레"라는 문구도 없어서

꽤나 복잡한 요리를 한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하니까.


은재는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틀어놓고

채소를 다듬었다.


감자

양파

단호박

버섯


이 정도면 충분하다.


채소를 다듬을 때 중요한 것은

감자를 가장 나중에 썰어야 한다는 것.

전분이 나와 칼이 지저분해지니까.

아, 그리고 전분 때문에 다른 채소가 칼에 붙을 수도 있으니 위험하기도 하니까.


평소라면 이것들만 넣고

채소 카레를 만들었을 테지만

어제 엄마가 닭안심을 사와서 그것도 넣었다.


닭안심의 힘줄을 제거하는 일에 신중을 가했다.

혹여나 아까운 살점이 잘리진 않을까 싶어서.


자, 그럼 재료 준비는 끝이다.


올리브오일을 냄비에 두르고

채소와 닭안심을 넣었다.

그리고 감자의 끝이 살짝 투명해질 때까지 볶는다.


감자의 끝이 살짝 투명해지면

물을 채소가 자작하게 담기게 담고

한 번 끓인다.

(절대 물을 많이 넣지 않게 조심하자!)


보글보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끓으면

그때 카레 조각을 넣는다.


그리고 카레 조각을 넣은 뒤

한 번 더 보글보글.

그때 수저로 휘휘 저어 주면서 카레가 뭉치지 않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지나있었다.

은재는 뿌듯한 기분에 배도 고프지 않았다.


토토로에 나오는 메이의 미소가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푸름이 찾아 올 땐 시간이 느릿느릿,

달팽이처럼 기어가니까.

(이유는 알 수 없다

푸름의 습기에 시간도 젖어버리기 때문일까?)

그런데 요리를 하면

메뉴를 선정하고, 재료를 준비하고, 재료를 다듬고,

볶고, 양념하고, 끓이고 하느라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게다가 결과물까지 나오니

그렇게 뿌듯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애인과 동거를 했을 때

매일 늦게 오는 애인의 야참을 만들어주는 것이

은재의 하루 일과였는데

애인이 오는 시간이 매번 새벽이었으므로

최대한 식지 않게 하려고 12시는 되어서 만들었다.

야참을 먹은 애인이 다음 날,

은재에게 피곤하지 않냐고 물었는데,

은재는 진심으로 피곤하지 않아서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요리는 즐거웠다.

시간을 허비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결과물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은재는 바다에서 전력질주를 한 기분이 들었다.

시원하고,

상쾌했다.


은재는 밥통으로 가서

가장 좋아하는 파란색 곰이 그려진 카레 그릇에

밥을 담고

따듯한 카레를 위에 올렸다.


그리고 한국인의 소울 푸드인 김치를 꺼내서

한 끼 든든하게 먹었다.


그리고 설거지와 뒷정리도 잊지 않았다.


다 헤치운 뒤에 침대에 누워 멍청하게 천장을 봤다.

가슴이 뻐근한 것이 개운한 기분.


그래서 우울할 땐 카레.

카레를 만든다.




P.S. 당신의 우울이 담긴 음식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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