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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유진 Oct 09. 2024

자살을 탐구하는 마음은

생각보다 그리 위험하진 않습니다.

은재는 유난히 날이 좋았던 어느 날,

데이트를 하다 말고 서점에 들어가

한 번에 세 권의 책을 샀다.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 저자 임민경

<자살에 대하여> 저자 사이먼 클리츨리

<자살의 이해> 저자 케이 레드필드 제이미슨



그리고 은재가 위와 같은 책들을 고르자

당시 남자친구였던 그 사람은

은재를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도 그럴 만 했다.


3년 간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이고,

게다가 자살 시도처럼 보이는 자해를 지속적으로 해온 은재니까.


하지만 은재는 그럼에도

이 세 권의 책을 사는 것을 주체하지 않았다.



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


그리고 이 세 권의 책들은

은재가 대학 졸업을 위한 논문을 쓸 때에

다시 한 번 쓰였다.


은재는 논문 주제는

'다자이 오사무와 이상의 소설에서 본 자살하는 사람의 심리'

였는데,


이것을 주제로 정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주 오래 전부터 다자이 오사무의 삶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지금 여기서

모조리!

나열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은재가 매료된 그의 삶의 흔적을 말해보자면

그건 바로,

사랑하는 여성과의 투신 자살 사건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사랑하는 여성(시메코, 토미에)과 절벽에서 투신 자살 시도를

무려 2차례나 했고

이내 성공하여 사망한다.


위험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당시 은재는

사랑하는 사람과 투신 자살한 다자이 오사무가

어떤 측면에서 '성공'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다자이 오사무의 삶에 너무 쉽게 매료되었다.


그래서 그의 대표적인 소설 <인간실격>을 읽었고,

다수의 단편 소설들을 읽었으며,

우연히 헌책방에서 그의 서한집까지 찾아서는

논문을 써야 할 시점에 이르렀을 땐

그를 가지고 쓰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서 아까 말했다시피 언젠가 산 세 권의 책은

은재의 생각에 근거를 만들어줄 자료가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아다리'가 딱딱 맞았다.


은재는 그런 기분이 들었고,

2주 정도의 시간 동안 논문을 다 완성했다.


아주 산뜻한 기분으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애인을 비롯한 다수의 친구들은 은재를 걱정했다.


은재는 그때도 그럴 만 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은재는 자해는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때는

은재를 우려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래서 은재는 그들에게

너무나 평온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근데 사실은 이렇게 읽다보면
오히려 살고 싶어져.


그리고 아무도 은재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하지만 사실이었다.

은재는 자살에 대한 세 권의 책과

자살하는 소설을 통해

좀 더 객관적으로 자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자살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사랑스러운 우리 집 뽀삐를

그저 강아지로,

어쩌면 단순한 생물로 본다는 것과 같다.


그렇게 되면

우울증과 자살의 깊은 연관성,

왜 자신이 그토록 자살을 하고 싶어 했는지,

자살 후에 오는 것들,

어떤 계절에 사람들이 많이 자살을 하는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이런 질문들에 대해 간단히 대답할 수 있어진다.


그러니까

자살을 탐구함으로써

자살을 온전히 자살로 바라보게 되면

오히려 자살은 먼 외딴섬의 어떤 것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작업이 시발점이 되어 정말 자살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은재의 경우에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멀어졌다.

자살로부터.


그래서 은재는 어쩌면 이게 하나의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첫 걸음은

두려움을 직시하는 것,

그것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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