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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유진 Jan 08. 2025

새로운 명함을 만들면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은재에게는

고등학교 동창이 만들어준

명함 하나가 있다.


은재가 가장 좋아하는 색인

보라색으로

은재의 상징까지 넣어 만든

아주 귀한 명함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SNS 아이디가 바뀌어서

누군가를 만나 건네주어도

한 번 더 설명해야 하는 명함이 되어버렸다.


세월이 지난 휴대폰처럼

바꿀 때가 된 것이라고

은재는 나지막이 생각하고 말았다.



은재의 명함은 아니고 제 명함입니다.



게다가 은재는 지금 투고를 준비 중이었다.

투고를 준비하면서

갈고닦은 긍정의 힘으로

어엿한 작가가 된 은재의 미래를 상상했다.


이를 테면,

이제 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 작가가 되어서

중요한 출판 업계의 사람을 만나는 모습이나

서점에 은재의 책이 버젓이 진열되어있는 장면이나

그로 얻은 수입으로 은재의 고양이들에게 멋진 캣타워를 사주는 광경을 말이다.


그러니 제대로 은재의 정보가 박힌

명함이 필요했다.


그래서 은재는 투고를 위한 PPT를 만든 뒤에

곧바로

명함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 그런 작업은 식은 죽 먹기였다.


은재는

빠르게 시안을 몇 개 만들어

친구들에게 공유했다.


그리고 투표를 해서

최종적으로 두 종류의 명함을 골라

인쇄소에 맡겼다.


며칠 뒤,

명함이 도착했고

은재는 설레는 마음으로

명함을 지갑에 두둑히 넣었다.


그런데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투표를 해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몇 장을 나눠주고

은재는

쉽게 명함을 보일 수 없었다.

(물론 지금 은재가 명함을 건넬 상황이 뚜렷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작가_ 은재


은재는

다른 게 아니라

그것 때문에 명함을 건넬 수 없었다.


그 말이 너무 쪽팔렸거든.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말하고 있는 내가 너무 쪽팔렸거든.


그러니까

결국

은재의 긍정적인 사고에 불이 붙어서

재가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는 소리다.


은재는 의문이 들었다.

의문이면서 동시에 사실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정말 작가가 맞는가?


글을 쓰면 모두 작가라고

듣기 좋은 소리를 하긴 하지만,

정말 내가 작가라는 명함을 가질 정도로

작가가 맞는지

은재는 의문이 들었고,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마치

자신만 알고 있는 비밀을

속 없이

털어놓고 다니는 것 같았다.


아니면

모두들 내가 공주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

스스로 공주라고

자랑해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쪽팔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만.


은재는

결국 명함을 서랍 안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작가가 되고 나서

그때가 되어서

이 명함을 꺼내기로 작정했다.


여기까지의 사연으로

긍정적인 사고는 이미 물 건너간 것 같지만

그래도

물 건너간 긍정적인 사고를

수영을 해서라도 건져올려보자면.


은재는 분명 작가가 될 것이다.


어떻게든,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게 다짐하면서

올해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바나나 작전에 임하기로 했다.


물론

오늘은

일을 더 늘리기 위해

입사 지원을 하려고

은재에게 맞는 기업을 찾는 데부터

막혔지만.


아아, 이러면 안 돼.


긍정의 힘을 믿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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