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이야기해도 될까요?

우울은 나의 소개, 나의 비밀

by 윤유진

당신은 사람을 얼마나 믿나요?


당신이 이야기한 비밀을

철저하게 지켜줄 거라고

그만큼 믿나요?


저는 사람을 믿어요.

저를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선할 거라고 믿어요.


그래서 때론 비밀을 비밀이 아닌 것처럼

말하곤 한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


은재는 새로운 사람을 종종 만난다.


가게 종업원 같은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부터

정신과 의사나 애인의 친구들과 같이

겉으로 맴도는 사람들,

그리고 은재가 생각하기에

비로소 관계라는 걸 맺는 사람들까지.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하는 은재여도

이런 사람들을 만나는 걸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가게 종업원처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겐 필요없지만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자신을 소개 해야 한다.


여담이지만 은재는 그런 자리를 무척 싫어한다.

자신을 소개할 때 집중되는 이목..

그걸 견딜 수 없어한다.


그래서 대체로 아는 사람에게 소개를 맡기곤 했다.

아니면 허공을 쳐다보면서

힘들고 어색하게 자기 소개를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그 장면을 생각하며

이불킥을 했다.


그러니 소개라는 건 처음부터 은재에게

난관을 준다.


그런데 그뿐만 아니라

은재는 지금까지 5년 간 우울증을 앓아오면서

소개에 대한 딜레마가 생겼다.


5년 동안 우울증을 앓으면서

은재는 우울을 자신의 친구로,

자신의 일부로 여겨왔다.


그러니 자신을 소개하는데

자신의 우울을 삼키는 게

꼭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더군다나 진지한 관계에 대해서는

꼭 꼭 꼭!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지 않으면 사기를 치는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은재는 지금의 애인을 만날 때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자신이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했다.


그 사실을 알고 떠난다면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마음을 단단히 하고.


아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지금의 애인은 다행히

은재를 버리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역시 사랑은 위대해.


은재는 역시나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사랑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 인해

작동되는 관계에선

이건 좀 다른 문제였다.


예를 들면,

은재는 예비 시댁이 생겼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의 식구들.

그 식구들에게 은재의 우울증을,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야 하는지

은재는 상당히 고민이 되었다.


일단 본능적으로 말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첫 만남 때 이야기 하지 않고 넘어갔는데,

우울증이라고 말하지 못하니

오히려 억지로 웃어야 했다.

더 기쁘고 재밌는 체를 해야 했다.

그러니 기분이 불편하고 안면근육이 불안해서

집에 돌아와서 무척이나 피곤했던 기억이 있다.


은재는 앞으로 시댁이 된다면 자주 봐야 할 텐데

이런 태도로 임해야 한다니, 마음이 복잡했다.


그리고

사실을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본능적인 생각과

나 자체를 부정한다는 불편함이 섞인

딜레마에 또 봉착하고만 것이다.


은재는 그날 밤에 한참을 생각했다.

일기장을 펼쳐놓고

계속 마음을 썼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되도록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나 자체를 부정한다는 불편함은 감수하고,

억지로 웃든지,

억지로 발랄하게 하든지

자신이 해내야 하는 것이라고.


왜냐하면

우울증이라고 말하는 순간

은재는 정말 그런 사람이 되어버리고

사람들은 편견에 휩싸여

은재가 조금만 기분이 울적해도

'아, 쟤는 그런 애니까'

이렇게 생각할 테니까.


그건 원하지 않았다.


물론 우울증 초기에

은재는 여기저기에다 자신이 우울증임을 말하곤 했는데,

그때 은재가 바란 상황들은

자신을 좀 더 배려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각자의 인생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배려를 바라는 건

사치이고 부담이다.

그래서 은재의 상상대로 되지 않았다.


그랬던 기억이 있어서.

은재는 예비 시댁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 있어서

자신이 우울증이라고 밝히는 건 삼가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말하고 싶은,

말할 수 있는 상대는

사랑이 있는 관계.


그것도 정확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


정말 사랑이 가득한 관계여야 한다.


은재는 그것을 명확히 하면서

자신이 우울증을 앓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말이 줄게 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자신의 친구이자 일부인 우울증을 설명할 수 없으니

할 말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은재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상대에 대해 묻는다.

나 자신은 철저하게 감추고 말이다.

그게 마음이 편하니까.


그러니까 은재는 앞으로의 관계에 있어서도

자신의 우울증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다.


웬만하면.


그게 자신을 지키는 방법인 것 같다고.

물론 역설적이게

그게 또 한 편으로는 자신을 부정한다는 것을 모르진 않지만.


그래서 불편하고

자신감이 떨어지지만.


세상에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해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몇 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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