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소원
어떤 수요일
은재의 엄마가 저녁까지 일을 하는 바람에
은재는 아빠와 단둘이 저녁을 먹어야 했다.
그런데 아빠가
은재에게
오늘은 외식을 하자고 했다.
은재는 그때 사실
애인과 다퉈서,
그리고 넘겨야 할 원고가 있어서
외식을 딱히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설명을 하기도 귀찮아서
아빠와 외식을 했다.
아빠가 좋아하는 대패삼겹살 집으로 갔다.
가서 국내산 대패를 시켜
아빠가 굽기 시작했다.
아빠는 늘 그랬던 것처럼
당신이 다니는 공장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건 정확히 말하면
그 공장을 다니는 사람들 이야기와
아빠 본인의 자랑이었다.
공장에 다니는 누구네 딸은 재수를 했다더라,
재수를 해서 전보다 낮은 대학에 갔다더라,
누구네 친구댁에서 딸기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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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아빠를 무서워하고 대단해한다.
다들 아빠를 무서워하고 대단해한다는 건
은재의 아빠가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에 집중하고 자존심을 부리는 성격이어서
대단히 속도를 내고 대단한 양의 일을 한다는 걸 뜻했다.
뭐, 물론
이런 성격을 은재도 물려받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아빠와 은재가 다른 점은
아빠는 일을 편식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면서 아빠는 진지하게
은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솔직히 은재야.
아빠는 있잖아.
네가 공부를 더 했으면 좋겠어.
네가 좋아하는 문학 공부를 더 해서
멋진 교수가 되었으면 좋겠다.
얼마가 됐든,
아빠가 서포트 해줄 테니까 말이야.
은재는 그 말을 두 마음으로 들었다.
하나는,
원하지 않는 길이어서 흘려들었다.
은재는 한 때 교수의 꿈을 꾼 적도 있지만,
그건 대학을 다녔던 시절,
멋 모르고 꿨던 꿈이었고
교수는 늘 공부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로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둘은,
듣는 순간 자격지심이 올라와
치부를 드러낸 것처럼 창피했다.
은재는 아빠가
은재가 돈을 못 벌어서,
아직 일인분의 삶을 살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더욱이 아빠는 애인에게 휘둘리지 말라는 말을 했다.
애인에게 휘둘리지 말고,
네가 원하는 삶을 살라고.
그러니 은재는 아빠가 은재의 수입을 전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런 말을 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은재는 그 당시 하고 있던 아르바이트를 그만 둘 생각이었다.
잦은 실수와 그로 인한 자존감 하락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은재는 좀 모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말이다.
그래서 그만 두기로 결심했는데,
아빠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 마음이 뒤숭숭했다.
그러니까 은재는,
사회 생활이 안 되는 불효자 딸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만 두겠다고 결심하고 원고를 쓰는데,
얼마나 마음이 가볍고,
술술 써지는지..
알게 모르게 아르바이트 자체가
은재에게 큰 스트레스였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은재는,
사회 생활이 문제라면
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라마 시나리오나
영화 시나리오처럼.
그렇게 밖으로 나가면 아빠도, 엄마도 인정해줄지 모른다고.
은재가 더 이상
집에서 놀고 있는 애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은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대패 삼겹살을 먹었고,
아빠의 이야기는 다른 데로 새어서
이제 아빠는 집에서 키우는 화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번에 조명을 달았던 화분 있잖아?
그거 새촉이 올라왔다?
신기하지? 조명을 떼버리니까 바로 새촉이 나는 게..
역시 그 조명이 문제였다니까..
하지만 은재는 새촉이 올라온 건,
그저 새촉이 올라올 때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장애물이라고 생각한 조명은
조금도 장애물이 아니었으리라고.
피어날 꽃은 어떻게 해서든 피게 되어있다.
은재의 화분에도
꽃이든 싹이든 필 것이다.
그리고
은재가 하는 어떤 일이 꽃을 피우기 위한 득이고,
꽃을 죽일 실인지..
구분하는 것은 접어두자.
아빠의 화분처럼,
그건 막상 장애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게 꽃을 피우는 힘이었다고
말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머무르지만 말자.
머무르지 않기 위해 움직이자.
은재는 돌아와 그런 일기를 쓰고,
행운의 조각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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