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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회전문가 Jan 29. 2022

애기 취급

너는 그냥 애기 해

"아, 언니! 걱정 마! 나 애기 아니니까!"

동생아. 네가 그렇게 소리쳐봤자 소용없단다. 너는 내게 영원한 애기일 테니까. 


그건 언니가 너를 못 믿어서도, 네가 부족하다 생각해서도 아니야. 혼내거나 낮추기 위해 하는 건 더더욱 아니고. 그냥 난....... 네가 몇몇 사람들에게는 아이였음 좋겠어서 그래. 


난 장녀로 살았잖니. 그래서 너도 알다시피 어느 k장녀들과 마찬가지로 어릴 때부터 어른처럼 굴기를 은근하게 기대받아 왔거든. 떼쓰지 않고, 울지 않고, 늦게까지 일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집안일을 다 해놓고, 동생들을 챙기는 부모 같은 언니이자 누나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단 말이야. 물론 그로 인해 좋은 점도 있긴 했지만, 결정적으로 아이로 살 수 있는 시간을 잃어버렸어. 그래서 그래. 너는 그런 상처가 없기를 바라서 그래.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나, 막내가 되고 싶었어. 무슨 짓을 해도 귀여움 받는 막내. 넌 청소를 안 해도 혼나지 않았잖아. 내가 말하면 혼날 말들도 넌 막내니까 다 용서가 됐지. 그게 너무 부러워서 아빠한테 애교를 부린 적이 있는데 아빠가 그러더라. 막내가 하면 귀여운데, 네가 하니까 징그럽다고. 그 이후로 난 아빠한테 애교를 부리지 않았어. 아빠가 나에게 원하는 이미지가 뭔지 그때 이후로 확실히 알았거든. 


나에겐 상황이 어쩔 수 없었을 거야.라는 말로 덮어지지 않는 기억들이 있어. 나를 정말 사랑했을까 의심되는 말들과 순간들. 그리고 그런 내 상처를 기특하다거나 대견하다는 말로 치환해버렸던 어른들이 지워지지 않아. '대견하다'는 말로 내 입을 막고, 손발을 묶었던 순간들이 잊히지 않아.


그래서 난 아이에게 절대 '어른스럽다'란 말을 칭찬으로 안 써. 아이가 아이로 살지 못하고 어른스럽게 구는 것은, 주위에 기댈 어른이 없기에 스스로 어른이 되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거든.

어른들은 그 사실을 은연중에 알고 있음에도 자신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그런 칭찬을 쓰는 거야. 자신이 못난 걸 인정하는 것보다 아이를 추켜세우는 편이 더 마음도 편하고 보기에도 좋으니까.


겪어보니 알겠어. 아이는 아이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살아야 해. 어른에게 '애 같다'라는 말이 칭찬이 아니듯, 아이에게 '어른 같다'는 말도 칭찬이 아니야.

나는 어른스러웠던 그때의 내가 기특하지도 않고, 대견하지도 않아.


그러니 너는 계속 제 나이로 살아줬으면 좋겠어. 그래서 애정표현이 서툰 내가 [너는 아직 어리니 실수해도 된다]는 말을, [넌 아직 애기야]라는 말로 대신한다는 걸 알아줄래. 그것이 어른스럽게 자란 나의 아이 같은 마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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